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88 |
화랑세기花郞世紀, 12세 풍월주風月主 보리공菩利公(7) |
보스톤코리아 2019-09-23, 10:20:08 |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은 비보랑이 9세 풍월주일 때는 전방화랑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태상태후 사도(진흥왕비)가 영특하고 기풍이 호방한 그를 특별히 아끼면서 보리공과 함께 우방화랑으로 임명하였다. 당시는 585년으로 미생이 갓 10세 풍월주로 취임한 때였다. 그리고 3년 후 588년에 하종이 11세 풍월주에 오르면서 보리를 부제로 삼았고, 김서현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았다. 591년에는 보리가 12세 풍월주에 취임하면서 김서현을 부제에 김용춘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았다. 그러나 김서현은 부제의 자리에 오래 있지 못하고 김용춘에게 넘겨 주어야만 했다. 그 사건의 발단은 김서현이 만명과 사통을 하면서, 만명의 어머니 만호태후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화랑도 부제의 위位를 박탈 당하였다. 화랑세기에 전하는 그 사건의 전말을 인용하기 전에, 8세 풍월주 문노의 재임 당시 개편된 화랑도의 조직과 편제를 보면, 좌우대화랑左右大花郞과 전방대화랑前方大花郞에 각기 3부部의 낭도를 거느리게 했다. 3부는 좌삼부左三部, 우삼부右三部, 전삼부前三部를 일컬음인데, 좌삼부는 도의道義 문사文事 무사武事를 맡았고, 우삼부는 현묘玄妙 악사樂事 예사藝事를 맡았으며, 전삼부는 유화遊花 제사祭事 공사供事를 맡았다. 그리고 별도로 진골화랑眞骨花郞, 귀방화랑貴方花郞, 귀문화랑貴門花郞, 별방화랑別方花郞, 별문화랑別門花郞을 두면서, 12~13세의 진골眞骨과 거문巨門/대족大族 자제들의 지원을 받아 좌화랑左花郞 2인, 우화랑右花郞 2인을 두었으며 각기 소화랑小花郞3인, 묘화랑妙花郞 7인을 거느렸다. 이렇게 잘 정비된 화랑도의 조직은 후일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과 김용춘의 아들 김춘추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김서현과 만명공주의 야합사건이 기록된 화랑세기를 인용해 보면, [하종공에게 명하여 전방화랑을 삼았다. 건복建福 2년에 보리공과 더불어 우방화랑이 되었다. 건복 5년 하종공이 풍월주가 되자, 보리공을 부제로 삼고 서현랑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아 공에게 속하도록 했다. 이에 이르러 공이 서현랑을 부제로 삼고 용춘공을 우방대화랑으로 삼았다. 그 때 만룡의 형 만명萬明은 나이가 들었으나 혼인을 허락받지 못했는데 서현랑과 사통을 했다. 만호는 원래 아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노하여 불허하고 보리공에게 명하여 용춘공을 서현랑에 대신하도록 했다. 서현 또한 그 지위를 사양하여 용춘공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만명의 정과 사랑은 더욱 굳어져 몰래 서로 도망하여 만났다. 만호가 이에 만명을 가두고 서현을 만노로 내치려 했다. 만명은 탈출하여 함께 도망했다. 태후는 더욱 노하여 벌을 주려 했다. 공과 만룡이 힘써 태후의 노여움을 풀어 무사하게 되었다.] 화랑세기도 참고하여 편찬한 삼국사기(권41열전1)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일찍이 서현이 길에서 입종갈문왕立宗葛文王의 아들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萬明을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면서 눈짓으로 그녀를 유인하여 중매를 기다리지도 않고 정을 통하였다. 서현이 만노군萬弩郡 태수太守가 되어 장차 함께 떠나려 하자,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것을 알고서 이를 미워하여 별제別第에 가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느닷없이 벼락이 옥문屋門을 쳤고 지키던 자가 놀라 우왕좌왕하자 만명은 뚫린 구멍을 따라 빠져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에 다다랐다. 서현이 경진일 밤에 형혹성熒惑星과 진성鎭星 두 별이 자기에게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 만명 또한 신축일 밤 꿈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태기가 있어 20개월만에 유신을 낳았다. 이때가 진평왕 건복12년으로 수나라 문제 개황開皇15년 을묘였다.” 이 기록에 이어서 김유신의 작명에 관한 내력이 나온다.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조금의 차이가 있다. 먼저 삼국사기에는 아버지 숙흘종이 노해서 만명을 가두었다. 그래서 많은 사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이 따른다. 일례로 서현이 가야파이기에 그들의 결합을 반대했다는 추측이다. 그런데 이미 서현의 아버지 김무력이 진흥왕의 적녀인 아양공주와 혼인을 하여 서현이 태어났기에, 만명이 입종갈문왕의 손녀이기는 하지만 입종의 후처인 금진과의 사이에서 숙흘종이 태어났고, 만명은 숙흘종과 만호 사이에서 태어났다. 만호의 부모는 이화랑과 지소태후이다.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생모이며 입종은 진흥왕의 생부이다. 입종(법흥왕의 동생)은 지소의 삼촌이다. 이러한 관계를 봤을때 서현의 신분이나 가문 때문에 반대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화랑세기의 기록을 보면 만명의 어머니 만호가 노하여 가두고 반대하였다. 만호는 아양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의 관계는 만호가 아양의 고모이다. 즉 아양공주의 아버지 진흥왕과 만호는 동복이부 자매이다. 둘은 지소가 어머니이고 진흥왕의 아버지는 입종이며, 만호의 아버지는 이화랑이다. 건복2년은 585년이며, 만노군은 현 충북 진천군이다. 형혹성熒惑星은 화성을 가리키며, 이 별이 나타나면 전쟁이 나고 없어지면 군사가 흩어진다고 믿었다. 진성鎭星은 토성을 가리키며, 그 1주기는 28년이다. 이 별이 있는 곳에는 나라가 길하며, 있지 않을때 있거나 이미 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나라는 땅을 얻게 된다고 한다.178) 178) 사기 권27천관서天官書 –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재인용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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