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72
화랑세기花郞世紀, 11세 풍월주風月主 하종夏宗(13)
보스톤코리아  2019-04-29, 10:27:41 
576년 진흥왕이 붕어하였다. 12세의 하종은 늘 진흥왕의 총애와 은혜를 잊지않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의 생일과 기일에 왕능을 찾아 추념하였고, 588년 풍월주의 위에 올라서는 휘하의 낭도들을 데리고 능을 찾았다. 비바람이 불거나 눈보라가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번 능침에 가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어려서 부터 정에 치우치지 않았고 화랑도의 수장이 되어서도 낭도들을 편애하거나 부당하게 질책하지 않았기에 많은 낭도들로 부터 신망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전 7세 풍월주 설원랑 때 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던 화랑도 조직 내부의 파벌을 아우르기는 쉽지 않았다. 

하종의 어머니 미실이 대원신통이었기에 그 또한 대원신통이었다. 자녀들의 인통姻統은 모계를 따랐다. 그래서 문노파에 속해있던 낭도들은 그를 잘 따르지 않았다. 이에 미실은 화랑도들이 화합하여 하종을 따르게 하기 위하여 보리공菩利公을 부제로 삼았다. 보리공의 아버지는 이화공이고, 어머니는 숙명공주로 지소태후의 딸이다. 즉 지소가 진골정통의 종宗이니 숙명과 보리는 진골정통이었다.162) 당시 화랑도는 크게 다섯분파로 나누어져 있었다.163)  첫째는 통합원류파이다. 이들은 문노파 중에서도 가장 정예들인 임종, 대세, 수일 등이 중심이었다. 둘째는 미실일파이다. 이들은 대원신통의 인맥으로 하종, 구륜공 등이 중심이었다. 셋째는 문노정파이다. 이들은 진골정통으로 지소태후의 명령을 받았기에 가장 권력이 있었으며 옛 규정과 전통을 지키는 낭도들로 보리공, 숙리부 등이 중심이었다. 넷째는 이화류이다. 이 낭도들은 통합원류파와 문노정파 중에서 혼성된 무리들로 정숙태자를 풍월주로 세우고 원광을 부제로 하려던 일파였다. 마지막 한파는 가야파이다. 통합원류파 중에서 천주공을 풍월주로 세우고 김서현을 부제로 삼으려 했던 무리들이다. 

이렇듯 대략 다섯파가 있었지만 크게는 두파였다. 진골정통파와 대원신통파가 늘 양립하였다. 그래서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는 당시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배출되었으며 서로의 이익이 기대에 충족되지 않으면 반목하였다. 외적으로는 화합을 하는것 같았지만 풍월주와 부제의 인맥이 다르면 결국 붕당의 골은 깊어만 갔다. 특히 당시 미실은 화합과 단결을 위하여 보리공을 부제로 삼았지만 오히려 낭두들을 비롯한 낭도들은 더 따르지 않았다. 이렇게 지휘계통에 항명으로 인한 대혼란이 생기자 보리는 하종을 찾았다. 화합의 묘수가 떠오르지 않았던 하종은 4세 풍월주를 역임하고 당시 상선上仙의 위에 있던 보리공의 아버지 이화공을 찾았다. 그리고 낭도들을 바르게 지도할 가르침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화공은 풍월주 하종과 아들 보리에게 화랑도들이 나아갈 길道을 충언하였다. 화랑도들은 시시비비로 서로 다투는 것이 아니라, 본래 우주의 청원淸元의 기氣에서 나온 선도仙道를 따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선도의 실행은 3세 풍월주 모랑공이 가장 모범적이었는데 아쉽게도 그만 그는 요절하여 자신도 다 배우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164)  그리고 이화공은 풍월주의 위를 도道를 통해서 구하지 않고 권세를 통하여 계승했기에 낭도들이 따르지 않음에 수치를 느낀다고 했다. 또한 계속되는 낭도들의 반목으로 지휘계통이 흔들린다면 차라리 풍월주의 위를 버리고 도를 구함이 참다운 생이라고 설파하였다. 이에 느낀바가 있었던 하종은 풍월주의 위를 사임하고 득도에 전념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낭도들이 이화공 자신이 다시 풍월주가 되려는 계략이라고 진언하여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결국 사도태후와 미실은 이화공, 세종공 등 모든 상선들로 하여금 ‘낭도대회’를 열게하였고 연회를 베풀어 합화하도록 했다. 그리고 불만을 나타내며 소외되었던 낭도들도 등용하였다. 즉 미실파가 독차지한 화랑의 요직을 이화공을 따르던 무리와 가야파에게도 나누어 주면서 화랑도의 내부는 다소나마 진정되었다. 이때 가야파에서 대표적으로 김서현이 전방화랑으로 등용되었다. 김서현은 김유신의 아버지이고, 전방화랑은 풍월주와 부제 다음의 서열이다.

162) 진골정통의 조祖는 옥모玉帽였고, 종宗은 지소태후였다. 반면에 대원신통의 조는 보미寶美였으며, 종은 사도태후였다.

163) 10세 풍월주 미생랑조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164) 모랑공은 3세 풍월주를 지냈다. 모랑의 아버지는 법흥왕이고 어머니는 백제 동성왕의 딸인 보과공주이다. 남모는 모랑의 누이이다. 남모는 화랑도 이전에 원화의 수장으로 낭도들을 이끌었다. 그러다가 준정의 질투로 살해되었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지소태후가 원화를 폐지하고 화랑도를 설치하였다. 이 때가 진흥왕의 즉위년인 540년으로 보는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리고 이화랑의 부모는 1세 풍월주 위화랑과 준실부인인데 누이 준화와 이화랑을 두었다. 준화가 모랑공과 혼인하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딸 준모가 태어났고, 모랑은 풍월주의 위에 있을 당시 요절하였다. 법흥왕이 국공國公의 신분으로 백제로 가서 보과공주와 사통한 시기는 479 ~ 500년으로 보인다. 한편 백제의 동성왕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살다가 479년에 전왕 삼근왕이 피살되면서, 세력을 잡고 있던 진씨眞氏들에 의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501년, 재위 23년 겨울에 사냥을 나갔다가 폭설을 만나 근처에 머무르던 중 위사좌평衛士佐平(경호실장) 백가가 정변을 일으키면서 시해당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475년 고구려가 백제를 침범하였을 때 신라가 원병을 보내면서 신라와 백제는 사이가 좋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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