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71 |
화랑세기花郞世紀, 11세 풍월주風月主 하종夏宗(12) |
보스톤코리아 2019-04-22, 10:37:30 |
해궁에 살던 미실의 가족을 왕궁으로 데려온 진흥왕은 그들을 위하여 새로운 궁을 건축하였다. 그리고 진흥왕은 미실을 잊지 못하여 입궁하여 자신과 함께 기거하기를 원했다. 당시 모든 내정은 사도와 미실이 외정은 세종과 설원, 미생 등 미실의 일파가 좌우하였다. 576년에 죽은 진흥왕은 그 전해 말부터 이미 친정을 하지 못했고 모든 정사를 사도왕후가 대리청정을 했다. 그리고 4월에는 미실전주가 대리청정을 하기도 하였다. 진흥왕이 죽은 8월까지는 사륜태자가 대리청정을 하였다. 이 때도 모든 내정은 사도와 미실에 의해 태자에게 전달되었다. 576년 8월 진흥왕의 죽음을 전후하여 화랑세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帝가 …명궁주明宮主를 …하고, 신궁新宮을 왕후궁 좌원左園에 지어, … 모궁母宮…. 하종이 입궁하여 공주와 전군의 벗이 되었다. 그 때 미실은 세종공의 아들을 임신한 지 이미 수개월이 되었으므로, 해산을 하고 입궁하겠다고 청했다. 제帝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입궁하여 옥종공玉宗公을 낳아 제帝의 마복자摩腹子로 삼았다. 이에 미실에 대한 총애가 다시 예전과 같아졌다. 미실은 심복들을 모두 다시 끌어 모아 중요한 지위를 주었는데, 제帝가 모두 허락했다. 또 세종공에게 명하여 입궁하여 살도록 했다. 미실은 이에 사도왕후와 함께 내정을 마음대로 했고, 세종, 설원, 미생은 외정을 마음대로 했다. 제帝는 풍질風疾로 내외의 정사를 보지 못하고, 오직 사도, 미실, 보명, 옥리, 월화 다섯 궁주와 더불어 궁중에서 즐거움을 탐닉했다. 정사는 모두 사도와 미실로 부터 나왔다. 처음에 사도와 더불어 미실은 삼생三生의 일체가 될 것을 약속했다. 이에 이르러 제帝가 자못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미실은 세종에게 사도의 사랑幸을 받도록 권했다. 세종은 힘써 거절했으나 어쩔 수 없이 후后와 통했다. 진흥제가 죽자 사도, 미실, 세종, 미생은 비밀로 했다. 태자가 알지 못했다. 사도가 먼저 미실로 하여금 태자와 통하게 하고, 다른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약속하고 태자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몸소 제위帝位에 있으며 신왕新王을 통제하고, 말보의 남편인 황종공荒宗公을 상대등으로 삼아 중망衆望을 눌렀다. 그 때 황종공의 딸인 윤궁이 미실의 심복이 되었고, 윤궁의 누이인 윤옥은 미생의 첩이었고, 윤궁의 남동생인 윤황은 사도의 딸인 월륜공주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황종공을 추대한 것이다. 거칠부공居柒夫公은 나이가 많아 대등인 노리부弩里夫, 노동공弩同公 등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그러므로 미실은 권세를 잃지 않았다. 하종공에게 급찬의 위를 주었다.] 진흥왕의 죽음을, 당시 내외정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던 사도왕후, 미실, 미실의 남편 세종(세종을 노동공으로 추측해 본다, 삼국사기에는 세종, 노리부, 노동공 모두 동일인으로 나온다), 미실의 동생 미생, 사도의 동생 노리부, 미실의 정인 설원 등은 비밀로 했다. 태자 김사륜은 몰랐다. 사륜은 사도의 차남이었지만 권력의 비정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사도는 미실로 하여금 사륜과 거래를 하게 하였다. 차기 왕으로 옹립함과 동시에 미실을 왕후로 삼을 것을…. 일단 그 거래에 응한 사륜은 차기 왕으로 올랐다. 그가 제25대 진지왕이다. 3년 후의 일이지만 그는 왕위에 오른 후 미실과의 약속을 어겼고, 정사政事는 안 돌보고 정사情事만 하는 ‘황음무도’한 왕으로 몰려 같은 무리들로 부터 폐위 당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사도왕후가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처럼 왕위에 정식으로 오르지는 않았지만 제위帝位에 있으면서 아들인 신왕新王 진지왕을 통제했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세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연로한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삼은 점 또한 흥미롭다. 미실의 심복인 황종의 딸 윤궁이 미실과 세종 부부의 중매로 8세 풍월주 문노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문노가 이끄는 화랑과 그의 신기神技와 같은 무예를 흠모하여 따르는 낭도들의 도움으로 579년 진지왕 폐위의 거사는 손쉽게 치루어졌다. 579년에 죽은 거칠부는 당시 70대 중반의 노구로 상대등에 오르긴 했지만 정사를 볼 수 없어서 대등인 노리부와 노동공 등이 외정을 보았다. 삼국사기에는 세종 노리부 노동공이 같은 인물로 등장하지만, 화랑세기에서는 세종은 태종(이사부)과 지소(진흥왕의 모후)의 아들이고, 노리부는 박영실과 옥진의 아들로 등장한다. 이렇게 막강한 권세의 진지를 구축한 미실은 아들 하종도 급찬(9등급)으로 승급시켰다. 564년에 태어난 하종은 진흥왕이 죽을 당시에는 12세였고, 정식으로 화랑의 입문은 15세에 하였다. 그리고 24,5세 무렵인 588년에 풍월주가 되었다. 그는 미실의 도움으로 문무의 정수精秀를 배웠다. 역사는 토함공에게 배웠고, 노래는 이화공에게 배웠다. 또한 검술은 문노에게 배웠고, 춤은 미생공에게 배웠다. 모두가 당대 그 분야의 최고봉으로 명성을 날리던 화랑의 수장들이었다. 토함공은 사다함의 형으로 풍월주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지만 학문에 더 전념하였다. 이화공은 4세 풍월주를 역임했다. 격검술이 신기에 달했던 문노는 우리의 역사상 최고의 무예가로 기록되어 있다. 미실의 동생 미생은 춤과 미모(그는 늘 화장을 했다)로 무수한 첩을 두었고 자녀가 무려 100여명이 되어서 이름도 잘 알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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