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55 |
화랑세기花郞世紀, 10세 풍월주風月主 미생랑美生郞(8) |
보스톤코리아 2018-12-10, 10:35:58 |
미생은 일찍이 동륜태자와 함께 어색漁色(여색을 탐하러 다니는 일) 을 하러 다녔다. 그 당시 궁밖에는 나마(11등급)의 직위에 있던 당두唐斗의 처가 절색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미생은 미인이라면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까지 넘보았던 동륜태자와 함께 당두의 집을 찾았다. 이야기를 조금 앞당겨 600년 초 무렵, 왕성의 거리에는 이런 노래가 유행하였다. <마누라를 바쳐 부자가 되고 일곱 아들 모두가 말을 탄다네. 딸을 바쳐 가난해져 세 아들이 모두 베옷을 입었네.> 이는 주군인 풍월주 용춘공(13세 풍월주) 을 위해 재물을 다 바쳐 그의 가족이 알거지가 되다시피한 대남보를 당두와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이 당두가 바로 절세가인을 마누라로 둔 화랑으로 처를 미생에게 바쳐 재물을 얻어 일곱 아들 모두가 말을 타고 다닐 수 있었던 그 당두이다. 미생은 550년에 태어나서 609년에 죽었고, 585년에서 588년까지 풍월주의 위位에 있었다. 그럼 먼저 대남보는 누구인가? 대남보는 미천한 신분의 화랑도였지만 화랑세기(필사본)는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삼국사기에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색한 미생의 어색에 마누라를 바친 당두와 김용춘(태종무열왕의 부친)이 13세 풍월주일때 딸을 바친 대남보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존하는 화랑세기의 ‘필사본’이 진본을 보고 필사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삼국사기47권(열전7권)에 임금과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13명의 전사들이 등장한다. 계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신라의 충신들이다. 이들이 해론, 소나, 취도, 눌최, 설계두, 김영윤, 관창, 김흠운, 열기, 비령자, 죽죽, 필부 그리고 계백이다. 그간(박창화의 필사본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역사학계 통설은 아마도 계백을 제외한 12명이 모두 화랑세기에 그들의 세계世系와 활약상이 자세하게 나오는 인물들이기에,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참고하여 간단히 그들의 업적을 기술했다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필사본에는 김흠순과 그의 아들 반굴과 손자인 김영윤 등 만이 나온다(그래서 영향력이 있는 학자들이 추측한게 맞지 않으니 필사본을 위서라고 단정한다. 즉 필사본이 등장하기 전에는 열전 제7권의 12명의 전사들이 화랑세기의 ‘주인공’ 들이라고 믿었는데, 막상 필사본의 내용을 보니 그 주인공은 32명의 풍월주들이었다. 결국 김흠순만 19세 풍월주로 주인공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면밀히 두 사서를 비교하고 교차검증해 보면 필사본은 도저히 창작할 수 없는 진본임이 확인된다. 먼저 삼국사기 열전의 죽죽竹竹에 관한 기록을 간추려 본다. <대야주(경남 합천) 사람으로 아버지 학열은 찬간撰干을 지냈다. 사지舍知로서 대야성 도독 김품석金品釋 휘하에 있었다. 선덕왕 11년 가을 8월에 윤충允忠이 이끄는 백제군에게 대야성이 함락당하게 되고, 품석 또한 처자식을 죽이고 자결하자, 남은 졸병을 모아 끝까지 항거하다 부하 용석과 함께 죽었다.> 사지는 13등급의 관위였고, 김품석은 고타소 공주의 남편으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사위이다. 선덕왕 11년은 642년이다. 후세 사람들은 부하 검일의 부인을 가로챈 성주城主 김품석보다 하급 군인 죽죽을 충신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죽죽은 화랑세기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13세 풍월주 용춘공전에 보면 찬간 학열이 대남보의 아들로 등장한다. 즉 삼국사기 열전에 죽죽의 아버지로 소개된 학열이 대남보의 아들인 것이다. 이렇듯 화랑세기에는 아버지의 아들로, 삼국사기에는 아들의 아버지로 단 한 차례씩만 등장하는 학열을 통하여 충신 죽죽의 할아버지가 미천한 출신의 부자富者 대남보라는 가족관계가 입증된다. 그리고 학열과 죽죽의 성이 대大씨임도 밝혀진다. 대남보의 족적은 많은 분량이 화랑세기에 실려서 전하기에 13세 풍월주 용춘공전에서 자세히 따라가 볼것이다. 다시 시간을 570년 경으로 되돌린다. 동륜태자의 출생년도는 알 수 없지만 그는 572년에 비명횡사했다.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궁주의 치맛폭을 풀려고 월담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그런데 미생이 550년생이고 동륜과 어릴때부터 친구처럼 지내면서 청년이 되어서는 어색을 함께하러 다녔다. 아마도 동륜태자의 출생년도도 미생과 비슷한 550년이라 추측해본다.249) 미생은 동륜태자와 함께 당두의 집을 찾아 그의 아내와 관계를 맺었다. 그 후로도 그들은 당두의 집을 찾았고, 그러다가 동륜이 죽고난(572년) 후에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첩으로 삼았다. 249) 아버지 진흥왕이 즉위년이 540년이고, 즉위시 나이가 삼국사기에는 7세, 삼국유사에는 15세로 나온다. 죽은해는 분명히 576년이니 출생년도가 달라진다. 7세에 즉위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더 얻는다. 즉위 직후 모후 지소태후가 섭정을 했다. 몇년을 했는지 기록은 없는데 545년 국사를 편찬할 때부터 친정의 기록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그 무렵으로 추측해 본다. 그리고 장자 동륜태자가 550년생이라면, 당시 진흥왕의 나이 17세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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