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42 |
화랑세기花郞世紀, 9세 풍월주風月主 비보랑秘寶郞(3) |
보스톤코리아 2018-09-10, 14:37:54 |
화랑세기 필사본에 비보랑의 정처와 계처 그리고 그들에게서 태어난 자녀들, 또한 첩 유지를 얻게된 이야기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자세하게 나온다. [공은 노리부의 딸 세진낭주를 아내로 맞아 아들 세호랑을 낳았고 딸 세미와 세신을 낳았는데, 세진낭주는 병으로 죽었다. 다시 진흥대왕의 딸 덕명공주를 아내로 맞았다. 덕명공주의 어머니는 곧 가야국 월화공주이다. 다섯 아들과 세 딸을 낳았는데 아들은 봉부, 보부, 석부, 보주, 진주이고 딸은 홍주, 녹주, 명주였고, 서자는 유오랑, 유매, 가기, 수동 등으로 모두 귀하게 영달했고 명성이 있었다. 유오랑은 공의 첩 유지의 소생이다. 유지는 검술을 잘했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난도亂徒를 많이 모아 소요를 일으켰다. 조정에서 군사를 모아 잡으려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공은 열여덟의 나이에 그 굴을 찾아가 생포했다. 아마 유지가 미모에 뜻이 높아, 공의 높은 풍모를 보고 스스로 항복했을 것이다. 공은 그 사람들을 가련하게 여겨 모두 풀어 주었다. 유지는 홀로 가지 않고 말하기를 “다만 그대를 쫓아 죽기를 원하고 다른 곳으로 도망하여 살기를 원치 않는다” 했다. 마침내 첩이 되었다. 유오랑은 어머니의 풍모를 갖추어 용모가 맑고 빼어났고 …기…가 있었다. 열여덟살의 나이에 지명법사智明法師를 따라 진陳에 들어가 …을 구하고 많은 책을 가져 와서 후진 사문들을 가르쳤으니, 그 공 또한 크다. … 국가가 태평하고 곡식이 익고 백성이 배부르게 되었다. 모두 공이 그 …주主라고 생각을 했다. 미생공이 취임함에 이르러 곧 봄에 가물어 곡식의 씨를 뿌리지 못했다. 진평왕이 반찬의 수를 줄이고 죄수를 풀어 주자 비가 왔다. 사람들이 미생공이 욕심이 많은 때문이라 생각했다.] 미생은 신라 제일의 미색으로 3대왕(진흥왕, 진지왕, 진평왕) 에게 색공을 하면서 전주/새주 등으로 왕후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른 미실의 동생이다. 그도 누이 미실 처럼 아름답고 춤을 잘춰서 공주들과 수 많은 유화들까지 홀리면서 백여명의 자식들을 두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조차도 다 몰랐다고 한다. 그러니 백성들의 민심은 비가 안와 가뭄이 들어도 욕심 많은 미생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생에 대해서는 다음 10세 풍월주 미생랑편에서 자세하게 다루고 여기서는 삼국사기에 아주 ‘엉뚱하고도 생뚱맞게’ 앞뒤가 전혀 연결되지 않아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세大世와 구칠仇漆’의 이야기를 펼쳐 보려고 한다. 화랑세기를 읽지 않으면 그들이 누구인지? 별 의미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는 인물과 내용을 저자 김부식은 왜 지면을 할애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그들 보다도 훨씬 영향력이 있었던 문노, 그의 아들 금강 또는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 등 많은 인물들은 고작 몇자나 몇줄에 지나지 않게 등장하는데 비해 대세와 구칠은 많은 분량이 ‘개밥의 도토리’ 처럼 등장한다). 화랑세기와 함께 그들을 따라가 본다. 먼저 삼국사기의 기록, 587년, 진평왕 본기 9년, 본기 9년에 기록된 내용은 이것 밖에 없다. <진평왕 9년 가을 7월에 대세와 구칠 두 사람이 바다로 떠났다. 대세는 내물왕의 7세손 이찬 동대의 아들로, 자질이 뛰어났고 어려서 부터 세속을 떠날 뜻이 있었다. 승려 담수와 사귀며 놀던 어느 날 말하였다. “이 신라의 산골에 살다가 일생을 마친다면, 못 속의 물고기와 새장의 새가 푸른 바다의 넓음과 산림의 너그럽고 한가함을 모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장차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 오월에 이르러 차차로 스승을 찾아 명산에서 도를 물으려 한다. 만약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나 신선을 배울 수 있다면, 텅 비고 넓은 허공 위를 바람을 타고 훨훨 나를 터이니 이것이야 말로 천하의 기이한 놀이요, 볼만한 광경일 것이다. 그대도 나를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러난 담수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세는 물러나와 다시 벗을 구하였는데, 마침 구칠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기개가 있고 절조가 뛰어났다. 드디어 그와 함께 남산의 절에 놀러갔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와 나뭇잎이 떨어져 뜰에 고인 물에 떠 있었다. 대세가 구칠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와 함께 서쪽으로 유람할 마음이 있는데, 지금 각자 나뭇잎 하나씩을 집어 그것을 배로 삼아 누구의 것이 먼저 가고 뒤에 가는지를 보자” 조금 후에 대세의 잎이 앞섰으므로 대세가 웃으면서 “내가 먼저 갈까 보다” 고 하니 구칠이 화를 내면서 “나 또한 남자인데 어찌 나만 못 가겠는가?” 하였다. 대세는 구칠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고 자신의 뜻을 말하였다. 드디어 서로 벗 삼아 남해에서 배를 타고 가버렸는데, 후에 그들이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이 기록 앞의 삼국사기는 8년 여름 5월의 기록 “뇌성과 벼락이 치고 별이 비오듯 떨어졌다” 그리고 바로 뒤의 기록은 10년 겨울12월의 기록 “상대등 노리부가 죽었으므로 이찬 수을부를 상대등에 임명하였다” 1년에 한 번씩 아주 간략하게 기록된 반면에 ‘대세와 구칠’의 이야기는 비교적 길고 상세한다. 하지만 내용의 중요성은 보이질 않고 대세의 신선에 대한 꿈과 허황된 망상 그리고 같이 갈 친구를 구한 것으로 별로 가치가 없는 기록이 뚱단지 같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런데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설명하지 않았지만 화랑도였던 대세가 신라를 떠난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화랑도 내에서는 대지각변동이 있었다. 화랑세기를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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