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22] Espresso what? |
보스톤코리아 2018-07-23, 14:29:13 |
처음엔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무지를 확인한 후엔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은 문을 닫은 Toys Я Us란 장난감 가게 이름말이다. 뒤집혀진 R은 누가 봐도 인쇄상의 오탈자로 보였다. 적어도 미국을 와본 적도 없고, 그러한 가게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대학 강사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필자가 미국에 온 후 Toys Я Us란 가게를 보게 되었을 때의 그 화들짝, 하는 감정이라니. 아하, 철자를 거꾸로 쓰기도 하는구나, 어차피 R이든 거꾸로 쓴 Я이든 발음은 are와 같으니까. Toys Are Us(장난감이라면 우리 가게죠)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오히려 거꾸로 쓴 Я로 시각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무렵에는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 모르는 게 있으면 그냥 상상할 뿐이었다. espresso란 단어를 처음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상하게도 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Express line은 '급행, 고속버스'란 뜻풀이가 되어있는데 espresso가 뭔지는 아는 사람은 없었다. 창피하지만, 당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는 express를 잘못 쓴 것 같다고 얼버무린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흐르고 서울의 골목골목에서도 새까맣고 진한 espresso를 즐기게 된 다음에도 필자는 젊은 시절의 무지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리곤 했다. espresso에 관한 필자의 에피소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 해 애리조나의 투싼에서 사막의 뜨거운 햇볕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우리의 현대자동차 '투싼' 덕분에 익숙하긴 하지만, Tucson이라 쓰고 [투싼]이라 읽는 백인들은 참, 그렇다. 그곳 인디언들은 [투싼]이 아니라 [툭손]이라 읽는다. 아무튼 마침 제자가 찾아와서 별 다방으로 갔다. 점원에게 "espresso, please" 라 했는데, 점원이 의아한 눈초리를 필자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렇게 쉬운 단어의 발음을 못 알아듣다니, 하는 마음으로 또박또박 되풀이했다. "이-에스-피-알-이-에쓰-에쓰-오, 에스프레소." 하지만 점원은 여전히 필자를 쳐다보면서 빙그레 미소까지 짓는 것이 아닌가? 명색이 영어선생인데, 제자 앞에서 체면이 여지없이 구겨졌다. 난처한 순간이 영겁처럼 느껴졌다. 점원이 천천히 뒤돌아서더니 카운터 위쪽 벽에 걸려있는 메뉴판을 가리켰다. 거기엔 Espresso란 글자 아래 밑줄이 그어져 있고, 그 아래에 쭈~욱 커피 이름들이 적혀있었다. 카푸치노, 라테, 어쩌구 그리고 맨 아래쪽에 Shot이란 글자가 보였다. 아하, 내가 에스프레소라 생각했던 것이 Shot이라는 것이로구나. 등줄기에서는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다행스럽게도 제자는 어느 새 저 멀리 테이블에 가 앉아있었다. 영어의 실수에 관한 한 누구나 한두 가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존경하는 한 원로 교수님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LA의 아들 집을 방문해서 인생의 중반을 넘어선 아들과 식사를 하셨다. 여긴 당신의 '나와바리'니까 당신께서 사겠다고 하면서 my territory라는 단어를 쓰셨다고 한다. 그러자 아들 왈, "아버님, 영어학자 맞아요? 그땐 territory가 아니라 turf라고 해야 하는 걸요" 하더란다. 학술원 회원이시고 우리 시대 최고의 영어학자라는 세평을 듣던 그 분은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교훈을 80이 넘어서도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배움엔 끝이 없다. 그리고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어를 외는 것을 넘어서 그 단어에 녹아있는 축적된 문화의 두께를 배우는 것이다. 영국의 언어인류학자 수전 로메인은 한 단어가 사라질 때마다 인류의 지적 유산이 사라지는 것이고, 한 언어가 사라질 때마다 인류의 소중한 지혜가 통째로 사라진다고 안타까워한다. 예를 들면 '가래'란 농기구가 있다. '가래'는 세 사람이 협동해서 논밭을 갈아엎는 중요한 기구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래'를 아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고, 그것이 전달해주던 삶의 방식은 박물관이나 역사책 속에서나 볼 수 있다. 경기에서 이긴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를 헹가래 치기도 하는데, 이 단어가 바로 가짜로 가래질을 한다는 '헛가래'에서 유래했음을 알기란 더더욱 어렵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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