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204 |
화랑세기花郞世紀, 7세 풍월주風月主 설화랑薛花郞(11) |
보스톤코리아 2017-11-16, 21:20:42 |
설화랑은 ‘머리카락 하나와 살갗 한 점’ 이 총주(미실을 지칭함)의 것이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할 만큼 미실에게 충성하였다. 그리고 그는 606년 58세의 나이로 죽을때 미실의 ‘이상한 병奇疾’ 을 대신하여 죽었다. 미실이 말년에 신라의 최초 비구니 사찰인 영흥사로 들어가서 불도에 전념할 때 그녀는 ‘이상한 병’을 얻었다. 밤낮으로 지극정성을 다하여 간병하던 설화랑은 자신이 대신하여 그 병을 앓게 해 달라고 주야로 기도하였다. 그의 기도가 발원하여(?) 미실은 회복하였고 설화랑은 병져 누웠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미실의 속곳을 품에 안고 충성을 바친 총주보다 먼저 저 세상으로 갔다. 충성스러운 신하를 잃어버린 미실은 비통해 하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죽은 침신에게 곧 그대를 따를 것이라는 말로 설화랑의 넋을 위로하였다. 이어지는 화랑세기, [미실이 일어나서 슬퍼하며 자신의 속곳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냈며, “나도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 했다. 그 때 나이가 58세 였다. 공은 5명의 아들과 7명의 딸이 있었다. 정궁부인 준화낭주는 장자인 웅雄, 차자인 잉피仍皮, 적녀인 정금낭주淨金娘主를 낳고 죽었다. 미실궁주가 개원낭주를 아내로 맞도록 명하여 아들인 충죽忠竹과 선죽善竹을 낳았고, 딸인 개?開?와 개천開川, 선월善月, 양월良月 6명을 낳았다. 미실궁주…. … 보종전군은 공의 소생으로 되었다. 난?蘭?…. 우야공주는 곧 나의 조모祖母이다. 잉피 … 원효元曉의 할아버지이다. 설씨薛氏는 이 때에 크게 창성하였다. … 보다 앞섰다. 찬하여 말한다: 미실의 신하이고 선화의 시작이다. 불문에 의탁하여 그 아름다움을 더했다. 훌륭하도다! 깨끗한 이름은 청사에 길이 남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인 충성은 하늘의 복을 열었다.] 위의 인용문에서 “우야공주는 곧 나의 조모이다” 부분을 좀더 자세하게 보면, 우야는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할머니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진평왕이며 어머니는 난야공주이다. 난야는 미실이 진흥왕의 총애를 받고 낳은 딸이다. 김대문의 아버지는 오기공이며 어머니는 운명(자의왕후, 야명, 순원과 형제지간)이다. 어머니 운명의 부모는 선품과 보룡(예원공과 형제지간)이다. 오기공의 부모는 예원공과 우야공주이다. 예원공의 부모는 보리공과 만룡부인이다. 만룡부인의 부모는 정숙태자와 만호부인이다. 정숙태자의 부모는 진흥왕과 숙명왕후이다. 그리고 만호부인의 부모는 지소태후와 이화랑이다. 다음은 “잉피 … 원효의 할아버지이다” 인용문이다. ‘해골물 마시고 득도한’ 최초의 대처승 원효의 ‘일체유심조’, 즉 ‘모든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깨달음은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전통사찰 제28호 수도사修道寺에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으로 다시 태어나서 십 수세기가 지난 현재도 후대들과 함께 숨쉬고 있다. 아마도 인용문의 탈자 부분은 원효의 어버지 설담날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그의 아버지는 설담날이고 할아버지는 설잉피, 증조할아버지는 7세 풍월주 설원랑/화랑이다. 설원랑의 아버지는 설성이며 그는 ‘미혼모’인 어머니 설씨에게서 태어났기에 아버지를 몰라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설화랑의 할머니(설성의 어머니)는 당시 빼어난 미모를 가진 유화(여자 화랑도)였다. 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한 미혼모였기에 누가 할아버지인지 기록이 없다. 화랑세기에 기록된 그의 가계를 추적하기 전에 삼국사기(제48권, 열전 8권)에 나오는 ‘가실嘉實과 설씨녀薛氏女의 사랑 이야기’, 그 전설적인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화랑세기에 등장하는 설화랑의 할머니 생애와 오버랩된다(다음 회에 그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설화랑의 후손들이 할머니의 성을 따랐기에 설씨 성의 시조인 설거백薛居伯이 자리잡았던 고야촌의 설씨와는 계통을 달리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해동법사 원효는 속명이 설사薛思이다. 그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딸 요석공주와 결혼하여 설총을 낳았다. 설총은 신라 3문장(설총, 강수, 최치원) 중의 한명이고 신라 10현의 한사람이다. 그는 이두와 구결문자를 규정했다. 설총의 어머니 요석공주는 처음에 김흠운과 혼인했다. 김흠운은 김달복의 아들이다. 남편 김흠운은 655년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리고 과부로 지내던 중 원효가 경주거리에서 노래를 지어부르며 요석공주에게 구애하였다. 아무도 그 뜻을 몰랐지만 왕인 김춘추는 그 뜻을 이해하고 불러서 요석공주와 결혼시켰다. 그리고 신라의 현자 설총이 태어났다. 요석공주는 첫남편 김흠운과의 사이에서 딸이 둘 있었는데 장녀 김씨는 문무왕의 장자 소명태자와 정혼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례를 올리기 전에 사망하였다. 그래서 차녀가 대신하여 소명태자와 혼인하였다.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소명태자가 병사하였다. 그래서 과부로 지내다가 소명의 동생 정명태자와 재혼하였다. 정명태자는 후일 신문왕이 되었다. 그리고 곧 ‘김흠돌의 난’이 일어났다. 그래서 김흠돌의 딸인 원비 왕후는 폐위되었고, 요석공주의 차녀 김씨가 683년 계비로 책봉되었다. 이 왕비가 신목왕후이다. 신목왕후는 아들 넷을 낳았는데 장남 김이홍은 제32대 효소왕이 되었고, 차남 김흥광은 제33대 성덕왕이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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