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96 |
화랑세기花郞世紀, 7세 풍월주風月主 설화랑薛花郞(3) |
보스톤코리아 2017-09-25, 11:36:03 |
문노文弩, 문노는 당시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를 통틀어 검격劍擊에 가장 뛰어난 신기의 인물로 꼽힌다. 그런데 그런 대영걸이 역사서에는 별로 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저기 조금씩 전하는 기록을 자세히 보면 그가 신라의 대영걸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은 그를 “사기士氣의 으뜸으로 삼았다” 고 전한다. 그리고 삼국사기(제47권인 열전 제7 김흠운전)에 보면 김흠운은 나밀왕의 8세손으로 어려서 화랑 문노의 문하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유신이 누구인가?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인 그는 삼국사기 50권 가운데서 3권이나 차지하는 기록을 남겼다(아마도 이런 방대한 기록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영웅시 되어서 후대에 전하지 않았을까?). 이런 김유신이 문노를 ‘사기士氣의 으뜸’으로 받들었다. 그리고 김흠운은 화랑 출신의 군인으로 삼국을 통일한 왕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사위이다(요석공주가 부인이다). 그리고 그는 신문왕(제31대)의 장인이며, 효소왕(제32대)과 성덕왕(제33대)의 외할아버지이다. 그가 화랑도 시절 문노의 문하에서 낭도로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역사속에서 별로(어쩌면 조금도, 아마 어떠한 역사시험에도 출제되지 않을거니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인물 한 명을 따라가 본다. 금강金剛이란 인물이다. 금강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통틀어 아주 간단하게 두 번 등장한다. 먼저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2년(655년)조의 기록에 보면 “봄 정월에 이찬 금강金剛을 상대등으로 삼고, 파진찬 문충文忠을 중시로 삼았다”고 되어 있다. 이 때는 김춘추를 왕으로 등극시키는데 일등공신인 김유신이 60세가 되는 해이다. 김춘추가 왕이 되고 처음하는 인사에서 그들은 처남매부지간이었고, ‘킹메이커’의 일등공신이었으며, 60세의 노장이었는데도 김유신은 상대등에 오르지 못하고, 후대의 눈으로 봤을 때는, 상당히 의외의 인물인 금강이 상대등으로 올랐다. 분명 금강은 상대등에 오를 만큼의 정치적 세력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럼 김유신은 당시 무슨 직위에 있었을까? 같은 삼국사기 태종무열왕 7년(660년)조의 기록에 보면 “봄 정월에 상대등 금강金剛이 죽었으므로 이찬 김유신을 상대등으로 삼았다” 라고 되었다. 결국 김유신은 65세에 그것도 금강이 죽은 뒤에야 상대등이 되었다. 그럼 이 금강이 누구인가? 화랑세기가 출현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화랑세기를 같이 읽어야만 당시의 역사를 폭넓게 보고 이해할 수 있다. 그가 바로 신라의 대영걸 문노의 막내 아들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속에서 나오는 이름자만으로는 퍼즐을 맞추기가 불가능하지만 화랑세기와 같이 읽으면, 당시 문노의 활약과 가문의 흥성이 대大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문노는 부인 윤궁과의 사이에서 3남3녀를 낳았다. 아들들은 대강大剛, 충강充剛, 금강金剛이고 딸들은 윤강允剛, 현강玄剛, 신강信剛이 있었다. 바로 이 막내아들이 상대등을 지낸 신라의 대영웅 금강이다. 윤궁은 처음에 진흥왕의 맏아들 동륜태자를 섬겼는데, 태자가 572년(진흥왕 33년)에 아버지의 후궁 보명궁주의 치마폭을 풀려고 월담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고나서 5년간 과부로 살다가 지도황후(진지왕비)의 명으로 선모仙母가 되었다. 선모는 국선國仙의 아내란 뜻이다. 즉 문노가 화랑의 수장인 국선이 되고나서 윤궁을 아내로 맞이하였다(국선은 풍월주와는 다른 화랑의 수장이다). 윤궁은 거칠부(황종)의 딸이다. 문노와 그 가문에 관해서는 ‘8세 풍월주 문노편’ 에서 자세하게 살펴볼 것이다. 진흥왕이 576년에 붕어하였다. 그가 죽을 무렵에도 신라는 많은 전쟁을 하였다. 6세 풍월주 세종은 왕명으로 휘하의 낭도들을 데리고 수없이 변방을 누비며 국경을 튼튼히 하였다. 미실은 진흥왕의 전주가 되어 남편인 세종을 의도적으로 경외로 출타 시키면서 진흥왕의 침실을 차지하였다. 세종이 전장으로 출정할때는 문노의 낭도들도 세종을 따랐다. 그 중에는 김흠운도 낭도로서 문노를 따랐으리라… 전장에서 신기神技의 검격술로 적을 단숨에 물리친 문노는 매번 크나큰 전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항상 논공행상에서는 뒷전이었기에 불만의 싹은 텄고 마침내 그는 풍월주 설원랑(설화랑)을 따르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일파로 일문一門을 세웠다. 드디어 화랑도는 설화랑의 풍월주파와 문노의 국선파으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서로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파벌을 키워 나아갔다. 이에 미실이 세종으로 하여금 중재를 하라고 부탁하였지만 그의 노력도 허사였고 설상가상으로 진흥왕도 죽었다. 576년의 사건이다. 이어지는 화랑세기, [그 때 문노의 일파가 세종을 따라 지방에서 전공을 세웠는데 위位를 얻지 못하여, 설원랑에게 불복하고 자립하여 일문을 스스로 세웠다. 그리하여 낭도들이 마침내 나뉘었다. 설원랑의 파는 정통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했고, 문노의 파는 청의淸議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하며 서로 상하를 다투었다. 미실이 걱정하여 세종에게 화합하도록 했으나 이루지 못했는데 진흥왕이 죽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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