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95 |
화랑세기花郞世紀, 7세 풍월주風月主 설화랑薛花郞(2) |
보스톤코리아 2017-09-18, 12:35:51 |
설화랑의 아버지 설성은 용모가 아름답고 교태를 잘 부려서 구리지의 용양신이 되었다. 남색의 관계를 묘사하는 부분이다. 먼저 당시에는 ‘신臣’을 임금과 신하 관계에서만 사용한 용어가 아니고 거의 모든 ‘상관과 부하’ 관계에서도 널리 통용되었다. 그리고 용양신이란 용어는 그 어원의 고사를 따라가보면 분명 남색의 관계에서만 사용했던 것이다. 즉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와 설화랑의 아버지 설성은 남색 관계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다함과 설화랑의 어머니는 같은 금진낭주이다. 그러니 구리지와 설성은 양성애자임에 틀림없다. 설화랑은 아버지를 닮아서 풍채가 수려하였다. 게다가 피리(옥적玉笛)도 잘 불어 많은 원화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으나 출신이 한미하여 낭도들은 그를 풍월주로 받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설화랑의 뒤에는 미실이 있었다. 설화랑의 아름다운 외모와 음률에 빠진 미실은 어느덧 그와 사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흥왕의 총애를 이용하여 낭도들에게 설화랑을 따르라고 호령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실은 진귀한 하사품을 낭두郎頭들에게 내리면서 설화랑을 풍월주로 받들라면서 회유하였다. 이에 설화랑은 더욱 겸손하게 몸을 낮추고 미실의 도움으로 많은 재물을 풀으니 낭도들은 과분한 처우에 ‘황송’하여 모두 복종하면서 그를 7세 풍월주로 추대하였다. 또한 미실의 동생 미생은 부제가 되었다. 그리고 미실은 설화랑에게 모랑공의 과처인 준화낭주를 아내로 맞도록 권했다(모랑공은 3세 풍월주를 지냈으며 일찍 죽었다. 남모의 아우이다. 모랑의 아버지는 법흥왕이고 어머니는 보과공주이다. 보과공주는 백제의 왕녀인데 법흥왕이 왕이 되기전 백제에 들어가서 보과공주와 사통을 하였다. 나중에 보과공주가 도망하여 신라로 와서 법흥왕의 후궁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남모와 모랑을 낳았다. 미진부가 2세 풍월주가 되었을 때 모랑을 부제로 삼았고, 모랑공은 진흥왕 9년인 548년에 풍월주가 되었으며, 555년에 비사벌 - 현재 창녕지역으로 사료됨, 진흥왕의 순수비 창녕비에는 그 지역을 비자벌比子伐로 표기하고 있다 - 을 여행하다가 병을 얻어 객사하였다. 1세 풍월주 위화랑이 모랑공을 좋아하여 자신의 딸 준화와 혼인시켜 사위로 삼았다. 그들 사이에는 딸 준모 한 명이 있다. 꽃다운 나이 스물에 청상과부가 된 준화는 그 후 18년간이나 수절을 하였다. 그러다가 573년 설화랑이 7세 풍월주에 오르고, 미실은 그들을 결혼시켰다. 다시 화랑의 수장인 풍월주를 남편으로 맞은 준화는 아들인 설웅薛雄을 낳았다. 그리고 모든 화랑들은 축가를 부르며 설웅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초대 풍월주인 위화랑공의 손자가 또 한명 태어났다며 연회를 베풀었고 설화랑을 풍월주로 섬기기를 거듭 맹세하였다. 미실이 이렇게 많은 하사품과 진흥왕의 도움으로 설화랑을 풍월주로 올린데는 아마도 서로가 정을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설화랑은 준화와 결혼한 이후에도 아랑곳없이 미실과 상통하였다. 준화가 알고 있었지만 금할 방도가 없었다. 그리고 미실은 준화의 딸 준모(아버지는 모랑공이다)를 동륜태자에게 바쳤다. 그리고 나서 미실은 또 준모를 동륜의 동생인 금륜에게도 색공하게 하였다. 이에 설원랑과 준화 부부는 동륜과 준모의 관계를 진흥왕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또 동생에게 바치냐면서 준모에게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라고 명했다. 하지만 준모는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의붓아버지인 설화랑이 준모를 꼬드겨서 상통하였다. 이를 안 부인 준화는 노발대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게다가 준모는 임신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설화랑의 아이였다. 그리고 설화랑은 그 불륜의 처신을 모면하기 위하여 또 다른 정인情人 미실에게 도움을 애원했다. 그래서 미실은 준모를 자신의 동생인 미생과 결혼시켰다. 그 후 곧 태어난 아이가 미모美毛이며 아버지는 설화랑이었다. 낭도들은 모두 미생이 아버지인 줄로 알았다. 화랑세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어지는 화랑세기(필사본)… [설원랑은 평소에 미실과 더불어 상통했는데, 이 때에 이르러 더욱 꺼리고 삼가하는 것이 없게 되었다. 준화가 이를 알았으나 금할 길이 없었다. 이에 앞서 준화의 딸 준모가 미실을 통하여 동태자와 통했다. 이에 이르러 또 금태자에게 바치려 했다. 설원이 저지하며 말하기를 “동태자를 섬긴 일을 성상이 아는데 또 금태자에게 바친 것을 알면 반드시 우리 부처를 좋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했다. 준화가 말하기를 “낭군의 말이 옳습니다” 했다. 이에 준모에게 명하여 여승이 되게 했다. 준모는 따르지 않았다. 설원랑이 꼬여 정을 통했는데, 1년 정도 지나 임신을 했다. 준화가 알고 노하여 말하기를 ‘태자에게 바치는 것을 저지하고 자기가 갖는 것은 이 무슨 도리인가” 했다. 설원랑은 이에 미실에게 구걸했다. 미실은 미생에게 아내로 맞도록 하여 일이 평온하여졌다. 준모는 곧 미생에게 가서 미모美毛라고 하는 이름의 설원랑의 딸을 낳았는데, 그 때 낭도들은 알지 못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민족문화 대백과 사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www.gch.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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