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온몸으로 밀다 |
보스톤코리아 2017-08-28, 11:18:05 |
강력했던 더위도 한풀 꺾인듯 싶다. 아침녁 선선한 기운이 제법이다. 한낮엔 여전히 따갑다. 모두 안녕하신지. 시인 김수영이 한 말이다. 시詩는 온몸으로 밀고 기어 나가는 것.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 소설가 김훈은 ‘종이위에 연필로 써야만 한줄 한줄 온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 이라 했다. 시詩이거나 소설이거나 온몸으로 밀고 가야 글이 되는 모양이다. 온몸으로 밀어야 하는게 어디 글 뿐이랴. 지하철에서 타고 내릴 적엔 온몸으로 밀어야 타든지 내리든지 할 수있다. 최영미 시인이다. 나는 사람들을 만난다 5초마다 세계가 열렸다 닫히는 인생들을 우르르 온몸으로 부딪혀 만난다 (최영미, 지하철에서 6) 한창 봄날이었다. 한국 논산훈련소 시절이다. 포복훈련 중이었다. 한참을 낮게 기어 전진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중이었던 거다. 엎드려 포복하고 있으니 온몸으로 땅을 밀고 기어가는 수밖에 없다. 엎드려서는 뛰거나 걸을 수없다. 철모는 흘러내려 땀과 함께 안경을 가렸다. 입안에서 뛰쳐 나오는 숨은 가빴다.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작 그만. 휴식’. 그 자리에서 고개가 떨어졌다. 그리고 꼼짝할 수없었다. 기운이 없었던 거다. 철모에 응달졌고, 내 눈은 땅에 가까이 떨어졌다. 코가 땅에 거의 닿을 지경이었던 거다. 깊게 한숨을 들여 마셨다. 먼지덩이가 밀려들어오며, 진한 땅내음이 후욱 끼쳤다.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에 땅은 냄새로 보답했던 거다. 냄새는 흙의 것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땅의 냄새였다. 땅은 엷은 운동장 색깔이었고, 굳었고 잔모래가 섞여 있었다. 아아, 행복해라. 아아, 이 땅내음. 땅내음은 땀냄새를 압도했다. 군대에서 병사들이 하는 일은 모두 체력훈련이다. 밥먹고 등산하고 뛰고 걷고 뒹굴고 팔굽혀 펴기 하고 엎드려 뻗쳐하고 축구하고 태권도 가르치고 배우고 모여앉아 수다떨며 놀고 자는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모두 강인한 체력을 위한 운동이었던 거다. 돈내고 헬쓰클럽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군에서 제대했다. 더 이상 땅바닥에서 기는 일은 없다. 땅 냄새를 코를 대고 가까이 맡을 수는 없었던 거다. 군 복무기간이 18개월로 줄인다 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시겠냐만, 젊은이들 흙냄새 맡을 행복을 뺏는건 아니겠지. 포근한 흙내음을 맡아 행복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밀어서 가야하는 게 어디 포복이고, 시詩이고, 소설이고, 지하철 뿐이랴. 사는 일도 온몸을 세상과 부딪치고, 비비고, 버무리고, 당기고, 밀면서 기어가야 한다. 덕분에 헉헉이고, 땀방울을 떨군다. 그래도 행복하지 아니한가? 살아서 땅내음 맡을 수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온몸을 무장하십시오 (공동번역, 로마서 13: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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