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91 |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20) |
보스톤코리아 2017-08-21, 11:36:44 |
이번에는 세종의 세계世系를 좀더 자세하게 짚어본다. 그의 어머니는 지소태후인데 법흥왕의 딸이다. 초명初名은 식도부인이다. 처음에는 삼촌인 입종에게 시집을 가서 진흥왕을 낳았다. 그리고 입종이 죽은 후 법흥왕의 유명으로 박영실과 혼인하여 황화공주와 송화공주를 낳았다. 하지만 지소태후는 영실공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병부령兵部令으로 있던 태종 이사부와 혼인하여 세종과 숙명공주를 낳았다. 지소가 박영실을 멀리하고 이사부를 맞이한 시기를 삼국사기(38권, 직관)로 고찰해 보면 541년에서 544년으로 유추해볼 수가 있다. 진흥왕이 540년에 즉위했는데 그때가 7세였다. 한편 진흥왕의 아버지 입종이 언제 죽었는지의 기록이 없지만 그는 오래 살지 못했다. 그리고 지소태후는 박영실과 혼인하여 황화와 송화를 낳았다. 그 후 지소는 이사부와 혼인하여 세종과 숙명을 낳았는데, 병부령은 516년(법흥왕3년)에 설치되었고 544년(진흥왕 5년)에 1인이 늘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사부는 541년에 병부령에 임명되었다. 태종의 아버지는 아진종이다. 아진종의 아버지는 습보(사보)갈문왕이며 습보의 아버지는 복호갈문왕이다. 또한 습보는 눌지왕의 조카이다. 복호의 아버지는 내물왕이다. 태종의 어머니는 보옥공주이다. 보옥공주는 제21대 소지왕의 딸이다. 소지왕이 석연치 않게 500년 말엽에 세상을 떴다(당시의 여러가지의 정치상황에 관한 모든 기록을 심층분석해 보면 태자 없이 벽화를 비롯한 후궁들에게 빠져 지내던 소지왕은 지증왕을 옹립한 무리들로 부터 죽임을 당한것이 유력하다). 그리고 차기 왕위 계승자로 인정되어 오던 아진종은 순장된 채로 세상을 떴다(소지왕은 후궁으로 부터 어린 왕자가 있긴하였다. 지증왕 역시 습보공의 아들이다. 동생 아진종이 소지왕이 죽을때 함께 죽었다. 순장이라기 보다는 후계자로 지목되었던 아진종이 정쟁에서 패했을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지증왕의 아들 김원종(후에 23대 법흥왕)이 벽화를 차지하였다. 보옥공주는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졌다. 다음은 지소태후의 인맥姻脈인 진골정통의 인통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당시 신라에는 왕을 비롯한 왕자들과 혼인하여 골품을 유지하는 인통이 있었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 그것이다. 지소의 어머니는 보도황후이며, 보도의 어머니는 선혜황후이다. 선혜의 어머니는 조생부인이며, 조생의 어머니는 아노이다. 아노의 어머니는 내류이며, 내류의 어머니는 광명이다. 광명의 어머니는 아이혜이며, 아이혜의 어머니는 홍모이다. 홍모의 어머니는 옥모이고 옥모의 어머니는 운모공주이다. 보도황후의 남편은 법흥왕이며 아버지는 소지왕이다. 보도의 어머니인 선혜는 아버지가 내숙공이다. 어머니는 조생부인이다. 조생은 아버지가 눌지왕이다. 제19대 눌지마립간이 최초로 마립간의 칭호를 사용했다. “마립간이란 방언으로 말뚝을 이른다. 말뚝은 함조를 말하는데 관위에 따라 배치했다. 즉 임금의 말뚝을 위주로 신하의 말뚝들을 그 아래 벌였으니 왕호를 이렇게 이름한 것이다.”(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 화랑세기의 저자인 김대문의 말을 인용, 17대 내물왕과 18대 실성왕은 이사금과 마립간의 칭호가 혼용되어 있다). 눌지는 내물왕의 장자로 태자의 신분이었지만 내물왕 사망 당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내물왕은 김알지의 후손인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당시의 국제정세는 신라가 거의 고구려의 속국으로 있었다. 실성은 내물왕에 대하여 원한을 품고 있다가 401년 귀국했고, 다음해 내물왕이 죽었다. 태자 눌지가 있었지만 18대 왕은 실성이 차지하였다(삼국사기에는 화백회의를 통해서 등극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국제 정세와 신라내부의 정황을 보면 고구려의 지원으로 실성이 왕위를 탈취한 것이 더 유력하다. 그리고 그는 내물왕의 장남인 태자 눌지를 고구려 군사들을 이용하여 살해하려고 하였지만 군사들은 눌지의 인품에 감복하여 죽이지 못했다. 그들은 그 음모를 보반태후(내물왕의 왕후이며 눌지의 어머니)에게 고하여 실성왕을 몰아내고 눌지가 왕위에 올랐다(417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실성왕의 죽음에 관하여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눌지천왕기’(박창화)에는 눌지의 세력들이 궁성으로 몰려오자 낭산의 ‘작은 성’으로 피신했다가, 거기에도 포위망이 좁혀지자 고뇌를 이기지 못하고 성루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210) 실성왕이 재위했을 당시 눌지의 동생들인 복호와 미사흔은 고구려와 왜에 볼모로 가 있었으며 그들을 구출한 박재상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상세히 전한다(삼국유사에는 김제상으로 나온다). 이 복호가 태종 이사부의 증조부이다. 210) 오두의 역사산책 <신라 실성왕의 투신자살과 노무현 대통령의 투신자살> 이란 장문의 연구서는 역사는 동일하게 반복되지는 않지만, 두 사건을 심도있게 비교연구하였고, 또한 반드시 같지는 않아도 유사한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교훈을 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 정정: 지난호(6세 풍월주 세종, 19회)에 실린 “설원랑이 이끄는 화랑도인 호국선護國仙과 양분되는 집단인 운상인雲上人 화랑도의 수장인 문노” 를 “설원랑이 이끄는 화랑도인 운상인雲上人과 양분되는 집단인 호국선護國仙 화랑도의 수장인 문노” 로 바로 잡습니다. 애독자들께 사과드립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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