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88 |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17) |
보스톤코리아 2017-07-31, 11:46:33 |
[미실은 평소에 동륜태자를 … 했는데, 정숙한 어머니로서, 황후궁에 들어가 전주가 되었다. 진흥제가 백년 후 … 할까 염려하여, 감히 태자를 거부하지 못하고 몰래 서로 이어 좋아했다. 태자는 조심함이 없이 구함이 더욱 심하여 졌다. 미실은 심하게 많은 것이 탄로될까 염려하여 미생과 의논하여 태자가 밖으로 나가 놀 때 유화 중 아름다운 사람을 택하여 많이 천거했다. 동륜태자와 더불어 미생의 무리가 날마다 밖에서 황음한 짓을 일삼았다. 홍제 원년 3월 동륜태자가 보명궁의 큰 개에 물리는 일로 인하여 죽었다. 대왕이 태자의 종인從人을 가려보니 미실의 낭도에 속한자가 많았다. 미실 …. 대왕 또한 새어나온 말을 얻어들은 바로는 미실의 방탕함이 …이 없어…. 세종이 부름을 받아 들어와 미실이 원화를 물러나는 것을 승인했다. 그리고 …하였다.] 미생은 미실의 동생이다. 그는 550년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2세 풍월주인 미진부이고 어머니는 묘도부인이다. 묘도는 사도왕후(진흥왕의 비)와 자매로 박영실과 옥진의 딸이다. 누이 미실이 진흥왕의 총애를 받았던 까닭에 미생 또한 왕의 총애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진흥왕은 미생이 어릴때 궁으로 자주 불러 아들들인 동륜과 금륜과 함께 놀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사다함의 형인 토함공으로 부터 화랑의 근본을 배웠다. 미생은 부귀하게 나고 자라서 아래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몰랐다. 성품 또한 여색을 밝히고 재물을 좋아하며 많은 사람들로 부터 신망을 잃고 있었다. 얼굴이 아름다운 미생은 어릴때부터 인격도야는 멀리하고 동륜태자와 함께 공주들을 포함한 많은 유화들의 치마폭에만 시선을 집중하였다. 미생은 당시에 아마도 처첩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아들이 백명이나 되었기에 아들들을 다 기억할 수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미생은 누이 미실과도 근친상간하였다. 일반적으로 10대 후반이나 20대의 혈기 왕성한 시기에 풍월주로 오르는데 반해 미생은 36세(585년)의 아주 늦은 나이에 풍월주가 되었다. 미생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0세 풍월주 <미생편>에서 다룰 것이다. 위의 화랑세기(필사본)의 탈자가 좀 있어서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지만 화랑세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파악하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광경이다. 동륜태자가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미생 못지않게 여색을 좋아하였다. 그는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인 미실과 먼저 사통하였다. 동륜은 미실을 원하였고, 미실은 처음에는 동륜을 피하였지만, 진흥왕은 나이가 들어 갔고 태자인 동륜의 지속적인 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웠기에 진흥왕 몰래 사통을 하였다. 하지만 동륜의 지나친 개방적인 행동에 그들의 연통이 탄로가 날까봐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미실은 동생 미생에게 부탁을 하였다. 궁 밖에 나가서 아름다운 원화들을 동륜에게 천거하도록 하였다. 이때 부터 그들의 주색과 황음은 정절을 향하게 되었다. 미생은 백명이 넘는 아들들을 낳기 시작하였고, 동륜태자는 아버지 진흥왕의 또 다른 후궁인 보명궁주의 치마폭을 들추기에 혈안이 되어가고 있었다. 때는 572년 춘삼월 어느날 밤, 봄꽃이 만개한 보명궁을 홀로 월담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동륜태자였다. 동시에 보명궁주가 키우던 큰개가 그를 덮쳤다. 동륜은 사나운 개에게 물리고 뜯겨서 중태에 빠졌고, 이에 놀란 보명궁주가 동륜을 데리고 들어가 응급치료를 했지만 그는 그만 절명하였다. 태자로서의 도리와 품위를 저버리고 부왕의 후궁을 노리다 ‘개죽음’ 당한 동륜은 4년 후에 앉을 왕좌 마저 ‘봄날의 꿈’이 되어 봄향기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576년 진흥왕이 사망하였고 차기 왕권은 미실과 사도태후의 주도로 세종과 노리부의 지원하에 둘째 아들인 금륜에게로 갔다. 그가 제25대 진지왕이다. 미실은 진흥왕에게 색공을 한 후에는 왕후궁에 전주가 되었다. 전주는 왕후와 비슷한 지위였다. 그리고 세종은 부인인 미실에게 신하처럼 복종하였다. 미실은 남편에게 풍월주는 나라에 공을 세워야 한다며 지방으로 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미실은 계속되는 색공으로 막강한 권력을 잡으면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원화가 되면서 모든 화랑과 유화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세종이 풍월주에서 물러나면서 결국 ‘남모와 준정의 살인사건’으로 폐지되었던 원화제도가 부활되었다. 그런데 이 ‘개사건’으로 인하여 진흥왕이 대대적으로 조사를 하였고, 그에 관여한 모든 화랑도는 미실을 따르는 무리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한 미생과 어울려 유화들과 놀아난 동륜태자의 행각과 미실의 방탕한 색사도 밝혀졌다. 결국 미실의 원화 지위를 박탈하고 세종으로 하여금 풍월주로서 모든 화랑을 지휘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미실은 진흥왕으로 부터 버림을 받고 출궁당했다. 미실의 두번째 출궁이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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