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86 |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15) |
보스톤코리아 2017-07-17, 14:35:01 |
때는 568년, 준정과 남모의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을 설치한지 29년 만에 다시 화랑은 폐지되고 미실을 원화로 추대하는 ‘원화제도’가 부활되었다. 삼국사기에는 화랑의 설치를 576년, 즉 진흥왕이 죽은해로 기록하고 있지만 같은 삼국사기의 사다함열전에 나오는 가야정벌(562년) 에 관한 기록 등과 화랑세기 등을 교차 검증을 해보면 화랑의 설치는 진흥왕이 죽은해가 아닌 즉위년(540년)으로 보는게 더 타당하다. 미실은 진흥왕의 총애를 받기 시작하면서 남편 세종을 멀리하였다. 그리고 풍월주인 세종에게 화랑의 무리를 이끌고 경외로 주유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은 진흥왕에게 색공을 잘하여 전주殿主가 되어 왕비에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고 있었다. 동시에 방탕하게도 설원랑과 미생과도 사통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을 원화로 추대하여 받들도록 종용하였다. 설원랑은 설성과 금진사이에서 태어났다. 사다함과는 이부동모 형제이다. 그리고 미생은 미실의 친동생이다. 동시에 미실은 진흥왕을 설득하여 화랑을 폐지하고 자신이 원화가 되었다. 설원랑과 미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가장 지근에서 보필하도록 하였으며, 금진을 화모花母로 삼았다. 원래는 풍월주의 부인이 화모이나 이 때 미실이 원화가 되었기에 금진을 화모로 삼았다. 금진은 자신이 바라던 원화는 못되었지만 미실의 도움으로 화모가 되었다. 금진이 법흥왕의 후궁으로 있다가 출궁했을때, 구리지(사다함의 아버지)가 찾아가서 금진을 원화로 추대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소태후가 원화를 폐지하고 위화랑을 초대 풍월주로 삼아 화랑도를 설치하면서 금진의 꿈은 사라졌다. 이어지는 화랑세기, [미실은 이에 설원랑으로 하여금 머물러 있으며 세종의 일을 대신하게 하였다. 미실은 총애를 믿고 방탕하여 설원랑과 그의 동생 미생과 통했으나 대왕은 이를 알지 못했다. 미실은 설원랑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내가 너희들과 사통했는데, 만약 낭도들의 우러러 봄을 잃는다면 곧 세상의 여론을 거둘 수 없을 것이다. 너희들은 어찌 나를 원화로 받들지 않는가?” 했다. 설원랑 등이…. 미실은 이에 왕을 설득하여 말하기를 “옛날 선대의 제帝들은 첩의…. … 총첩을 낭도로 하여금 받들게 하여 함께 남도南桃에서 조알을 받았습니다. …첩은 폐하의 총애를 지극히 받았습니다. 아직 … 없습니다. 세종이 낭도를 많이 거느리고 지방에 있는데, 만약 첩이 … 변고가 있으면 첩이 원컨데 스스로 원화가 되어 낭도를 모두 거느리는 것입니다. … 기쁘게 여겼다. 세종을 불러 풍월주에서 물러나게 하고 미실을 받들어 원화로 삼았고, 설원과 미생을 봉사랑으로 삼고 금진을 화모로 삼았다. 세종은 이에 그 낭도를 모두 해산하고 돌아가게 하며 말하기를 “새로운 원화는 곧 나의 옛 부인이다. 너희들은 불평하지 말고 잘 섬기도록 하라” 했다. 낭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울며 물러가지를 못했다. 진흥왕이 설원과 미생 두 화랑에게 명하여 낭도의 많은 무리를 통솔하고 조알케 했다. 진흥왕과 미실전주는 함께 곤룡포와 면류관을 갖추어 입고 나와, 남도에서 조알을 받고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원화의 제도는 폐한지 29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 처음에는 세종의 후궁으로 입궁하였으나 주어진 기회를 잘 포착하고 탁월한 색공으로 진흥왕의 총애를 한몸에 받은 미실, 미실은 그가 태어난 인통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먼저 그의 증조할머니인 벽화를 보면, 500년 9월, 소지왕이 날이군에 순시를 갔다가 이 지역 파로의 딸 벽화의 진상을 받고 처음에는 그녀를 취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경주에서 영주까지 수 차례 잠행을 하여 벽화와 밀회를 즐겼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립간22년). 벽화는 당대의 가장 미인으로 그려져 있다. 벽화의 어머니 벽아 역시 미인으로 후궁으로 입궁했다가 섬신공에게 시집갔다(이 섬신공이 파로와는 동일인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벽화의 딸이 삼엽궁주(아버지는 법흥왕)이고, 삼엽궁주의 아들 미진부가 미실의 아버지이다(어머니는 묘도). 묘도의 어머니는 옥진이며, 옥진의 아버지가 위화랑으로 벽화와 남매지간이다(위화랑은 섬신공과 벽아의 아들이다). 이렇듯 미실은 미의 유전자를 타고 태어났다. 잉태될 때의 상황도 예사롭지 않다. “옥진궁주가 꿈에 칠색조가 자기의 가슴속에서 날아 묘도에게 들어가는 것을 보고 놀라 일어나 이상하게 여겨 묘도의 침실에 가 보았더니 그때 묘도와 미진부공이 함께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옥진은 이에 기뻐서 ‘너희부부는 이제 귀한 딸을 낳을 것이다.’ 하였는데 과연 미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용모에 대해서는 “용모가 절묘하여 풍만함은 옥진을 닮았고, 명람함은 벽화를 닮았으며, 아름다움은 오도를 닮아서 백가지 꽃의 요염함을 합쳤고, 세 가지 아름다움의 정기를 모았다고 할 수 있다”(오도는 옥진의 어머니). 대원신통의 인맥을 형성한 그들은 “도를 부흥시킬만 하다” 고 하면서 어릴때부터 미실에게 방중술과 가무를 가르쳤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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