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78 |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7) |
보스톤코리아 2017-05-15, 11:31:49 |
때는 561년 이른 여름, 신라의 왕성인 월성에서 늘 진흥왕을 모시며 살던 왕의 이부동복 동생인 세종전군이 나이가 들어 배필을 구할 때가 되었다. 어머니인 지소태후가 많은 귀족의 낭자들을 입궁시켜 세종전군 옆에서 그를 받들게 하였다. 그 많은 낭자들 가운데 당대의 가장 미인이었다는 미실도 있었다. 미실은 입궁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세종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곧 그들은 상통하였다. 미실은 입궁하기 전에 연인 사다함이 있었지만 그에 아랑곳없이 세종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졌다. 세종 역시 다른 많은 낭자들은 관심 밖이었고 미실에게만 온정을 쏟았다.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본 지소태후는 미실이 박영실의 외손녀라고 입궁시키기를 꺼려했음을 후회하며 크게 기뻐하였다. 미실은 후일 남편인 세종전군 뿐만 아니라 3대 왕(할아버지 24대 진흥왕, 아들 25대 진지왕, 손자 26대 진평왕)들에게 색공을 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어잡았다. 한편 지소태후는 자신의 딸 숙명공주(삼국사기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를 진흥왕의 정비로 삼을 계책을 꾸미고 있었다. 당시 진흥왕은 정비인 사도왕후가 있었다. 사도는 박영실과 옥진궁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묘도와는 자매지간이며 미실은 묘도의 딸이다. 그러니까 사도왕후는 미실의 이모이다. 숙명공주는 지소와 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세종전군과는 동부동복의 오누이이며 진흥왕과는 이부동복의 오누이이다. 지소는 자신의 아들과 딸인 이부동복의 자매를 부부로 결합하려고 했다(이런 식의 혼인으로 신국 신라의 성골은 유지되었다, 성골의 씨가 말라 진골인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으로 등극하기 까지는…). 물론 자신의 통統인 진골정통으로 인맥姻脈을 이으려고 했던 것이다. 반면에 사도는 대원신통으로 신라 왕족에게 인맥姻脈을 이어온 또 하나의 인통姻統이었다. 지소는 사도를 왕후에서 폐하고 숙명공주로 하여금 왕후로 책봉하려고 했다. 이 계책을 미리 알게된 미실이 이모인 사도왕후에게 고하였다. 왕후는 진흥왕에게 눈물로 호소하게 되었고 왕은 사랑하는 왕후 사도를 폐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더욱 더 사랑하였다. 미실은 지소태후의 계책를 사도왕후에게 누설한 죄로 지소의 노여움을 사 그만 출궁을 당했다. 전군의 정처가 될 기회를 졸지에 날려버리고 출궁을 당한 미실은 다시 사다함에게로 돌아왔다. 561년 여름의 작열했던 태양의 열기도 미실과 세종의 뜨거웠던 사랑이 종식되면서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사다함과의 재회도 잠시, 사다함은 대가야의 반란군 진압에 자청하여 출전하게 되었다. 그 때가 561년 9월이었다. 위의 내용이 화랑세기 6세 풍월주 세종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아래 인용된 화랑세기에는 년도가 나오지 않지만 삼국사기와 교차 검증하면 정확한 계절을 추산할 수 있다). [태후가 크게 기뻐 말하기를 “사랑하는 지아비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나는 잘못할 뻔 했습니다” 했다. 이에 미실로 하여금 궁에 들어오게 했다. 섬긴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공과 더불어 상통을 했고, 정의情意가 얽혀 깊어졌다. 그 때 태후는 숙명공주를 사랑하여 장차 통統을 이으려 사도황후를 폐하고자 했다. 사도황후는 곧 미실의 숙모였다. 이에 그 계책을 황후에게 누설했다. 황후는 이에 울면서 제帝에게 원통함을 호소했다. 제帝는 본래 황후를 사랑했기 때문에 태후의 헐뜯음을 듣지 않고 황후를 더욱 사랑했다. 태후가 노하여 …을 하려함이 있었다. 미실이 걱정하여 태후에게 나아가 간했다. 태후는 이에 미실을 불러들인 것을 후회했다. 이에 미실을 불러 꾸짓어 말하기를 “너로 하여 전군을 받들게 한 것은 단지 옷을 드리고 음식을 받드는 것이다. 그런데 감히 사사로이 색사를 보여 전군을 …어지럽혔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다” 했다. 이에 출궁을 명했다.] 반면에 진흥왕은 어릴때 부터 궁에서 같이 자라면서 보아온 이부동복의 오누이, 어머니 처럼 기氣가 세고 고집많은 숙명공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흥왕은 실권을 잡고 있던 지소와 태종(이사부)의 위세에 숙명을 왕후로 맞아드렸다. 그들 사이에서 정숙태자가 태어났다. 하지만 정숙은 왕위를 물려받지 못했으며, 나중에 어머니 숙명이 이화랑과 사랑에 빠져 스스로 출궁하여 궁 밖에서 살게 되면서 이화랑의 아들이라는 의심마저 받게 되고 만다. 한편 진흥왕과 정비 사도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장남이 동륜태자이다. 하지만 동륜은 ‘개 사건’으로 ‘개 죽음’을 당하였기에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태자 시절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의 궁을 월담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그래서 왕위는 둘째 아들인 금륜(진지왕)에게로 이어졌다가, 다시 동륜의 아들 김백정(진평왕)에게로 이어졌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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