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74 |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3) |
보스톤코리아 2017-04-17, 11:37:45 |
이어지는 김대문의 화랑세기, [태종공이 일찍이 일이 있어 사사로이 진흥왕을 찾아뵐 때, 공이 시측했다. 태종공은 진흥제에게 먼저 절하고 공에게 다음으로 절했다. 공은 황망히 나아가 부축하며 감히 절을 받지 않았다. 제帝가 말하기를 “이 노인은 비록 중신重臣이기는 하나 나의 신하이다. … (지위로) 너에게 절하지 않을 수 없다” 했다. 공이 울며 말하기를 “아버지 …입니다. 어찌 신으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덕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 라 했다.] 이 부분도 탈자가 적지않아 정확한 해역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후의 문맥과 함께 보면 충분히 뜻을 알 수 있다. 진흥왕은 이부동복의 막내아우인 세종을 많이 사랑했다. 그래서 항상 곁에 두고 시측하게 하였다. 위의 장면은 이사부(태종)가 진흥왕을 찾았을 때의 한 광경을 보여준다. 전군殿君 외에 세종의 정확한 관등이나 지위가 나오지 않아 궁금하지만 이찬과 상대등을 지낸 이사부가 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절을 하며 예을 갖추었다면 전군의 지위도 갈문왕에 버금감이 분명하다. 여기서 잠시 당시 신라의 관등과 골품별 승진 상한선, 그리고 갈문왕제도를 살펴본다. 먼저 당시 신라의 관등과 골품별 승진 상한선을 본다. 신라는 17등급의 관직이 있었다. 1등급 이벌찬 부터 17등급의 조위는 왕성에서 재직하는 경위京位직이다. 자세히 보면 1등급 이벌찬, 2등급 이찬, 3등급 잡찬, 4등급 파진찬, 5등급 대아찬, 6등급 아찬, 7등급 일길찬, 8등급 사찬, 9등급 급찬, 10등급 대나마, 11등급 나마, 12등급 대사, 13등급 사지, 14등급 길사, 15등급 대오, 16등급 소오, 그리고 17등급 조위 이다. 그리고 외위外位의 관직으로는 7등급 약간, 8등급 술간, 9등급 고간, 10등급 귀관, 11등급 선간, 12등급 상간, 13등급 간, 14등급 일벌, 15등급 일척, 16등급 피일, 17등급 아척 으로 나누어져 있다(이 외위는 통일신라 이후인 674년, 문무왕 14년에 지방출신에게도 일률적으로 경위를 주면서 자연히 폐지되었다). 관복의 색깔은 1등급에서 6등급까지는 자색(짙은 남색의 자주색)이고, 7등급에서 9등급은 비색(붉은색)이며, 10등급과 11등급은 청색이고, 12등급에서 17등급은 황색이었다. 그리고 골품별 승진 상한선은 진골이어야만 1등급까지 진급이 가능하고, 6두품은 6등급, 5두품은 10등급, 4두품은 12등급 까지만 승진이 가능하였다. 그외에 중앙관직과 지방관직의 취임 가능 상한 관직이 등급에 따라 다르게 주어졌다. 가령 중앙관직의 최고위급인 영令은 1등급에서 5등급에게만 취임이 가능하였고, 지방관직의 최고위인 도독은 2등급에서 8등급에게만 주어졌다. 다음에는 갈문왕제도를 살펴본다. 갈문왕葛文王은 신라 왕실에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왕족과 근친 귀족들에게 추봉하였던 왕명王名이다. 그 추봉 범위는 왕의 아버지, 왕의 외할아버지, 왕의 동생, 여왕의 남편, 왕비의 아버지, 왕의 숙부, 심지어 왕을 견제할 만한 세력을 형성한 귀족 등으로 사회적인 특권을 부여받았다. 갈문왕제도는 일찍부터 존재하였으며 초기 이사금시대에는 갈문이라고 부르다가 마립간 시대에 와서 중국식의 표현을 빌어 갈문왕으로 칭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적으로 왕위를 계승하지 못한 왕의 형제들에게 주어졌다. 갈문왕은 조선시대에 많이 추증된 3정승 6판서의 직위와는 달리 살아있을때 추봉되었던 칭호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조분 이사금의 아버지 골정, 첨해 이사금의 아버지 세신, 지증왕의 아버지 습보, 진덕여왕의 아버지 국반 등이 왕의 생부로서 갈문왕에 추봉되었다(조선의 흥선대원군과 같다. 조선의 대원군 4명중에 생전의 대원군은 흥선대원군 밖에 없다. 나머지 3명은 모두 사후에 아들이 왕이 되었기에 추증되었다. 덕흥대원군 - 14대왕 선조의 아버지, 정원대원군 - 16대왕 인조의 아버지, 전계대원군 – 25대왕 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 26대왕 고종의 아버지). 또한 왕의 장인, 즉 왕비의 아버지로서 갈문왕에 추봉된 사람은 일지, 허루, 마제, 지소례, 내음, 이칠, 복승 등이다. 알천의 경우는 김춘추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알천의 조부가 갈문왕에 봉해졌다. 왕의 남편으로는 선덕여왕의 남편이 음갈문왕에 추봉되었다. 그외에도 진평왕의 동생이자 선덕여왕의 삼촌인 백반과 국반도 갈문왕으로 봉해진 기록이 있다. 그런데 세종의 경우는 갈문왕에 추봉된 기록은 없지만 전군殿君으로 봉해져 있었다. 진골로 이찬과 상대등의 벼슬을 지내고 막강한 세력가였던 김태종(이사부)이 친아들 세종에게 배례를 해야만 했다는 화랑세기의 기록은 당시 세종전군이 진흥왕을 시측하면서 갈문왕에 버금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다(전군제도는 조선시대에 왕의 형제들에게 봉해지는 대군大君과 같다고 보여진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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