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신 포도주
보스톤코리아  2017-04-10, 11:46:19 
  두어 주 전前이다. 보스톤 한인교회 이영길 목사 설교중이었다. 초반에 머리가 복잡해 졌다. 이연실의 목로주점 가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2절이었는데, 내겐 1절이 더 가깝다. 옮겨 적는다. 들으면 더 아련하다.

…..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
이왕이면 더 큰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
오늘도 목노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목로주점, 이연실 작사 작곡 노래)

  옛직장 동료가 있다.  동연배同年輩 일본인이었다. 그의 취미가 고상했다. 와인에 대해 깊히 공부했고, 제법 일가견을 갖췄다. 상당한 돈을 와인을 사들이는데 쓴다고 고백했다. 그의 좁은 집에도 와인 저장고를 갖추고 있었다. 내 눈엔 별 취미도 다있다고 생각했다. 내게 와인은 마시는 술일뿐, 완상玩賞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멍청한 질문을 했다. 어떤게 좋은 와인이냐?  대답이 경쾌했다. '제 입에 맞는 와인.' 내가 무릎을 쳤다. 값 비싼 와인을 맛볼 기회가 닿으면, 도무지 맛이 나지 않는다.  가격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오피스에 들어섰다. 얼굴이 밝지 않았다. 그가 털어놨다. 일본에서 몇 친한 친구들이 놀러 왔단다. 밤새워 와인을 나눠 마시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부탁했다. '다른 와인은 다 마셔도 된다. 하지만 이것만은 마시지 말고, 아예 생각도 말라.'  아끼던 와인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퇴근하고 보니,  그 와인 한 케이스를 모조리 비웠단다. 한 두병도 아닌바 모조리 마셔 버린 거다. 방안에는 빈병들만 뒹굴었음은 불문가지였다.  찾아온 친구들에겐 우정도 맛좋은 포도주의 유혹을 이길 수없었던 거다.  위로할 만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너무 열받아 씩씩거리며 투덜댔기  때문이다. 

  곧 부활절이다. 부활절과 포도주는 관계깊다. 포도주는 오래되면 시어진다. 식초맛이 난다는 말이다. 옛적 로마시대에는 신포도주를 포카리스라 불렀다. 이 신포도주 일정량을 병사들에게 급료로 지급했다. 먹을 물이 귀했으니, 싸구려 신포도주는 귀한 음료였다.  

  지금이야 포장마차이다. 내 선친세대엔 목로주점이란 더 친근했을 것이다.  아니 대포집이란 말이 더 가깝다.  그런데 포장마차건 목로주점이건 대포집이건 포도주는 팔지 않는다. 그래도 한잔 포도주는 가까운 친구와 나눠 마셔야 제맛이다. 어느 한국술 선전 문구다. 내게도 역사가 부러워할 우정이 있다. 괜히 몇자 끌적이다 보니 목만 컬컬하다. 아내 몰래 한잔 꺼내 마시나? 

한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마가 15:36)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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