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72 |
화랑세기花郞世紀, 6세 풍월주風月主 세종世宗(1) |
보스톤코리아 2017-04-03, 13:28:26 |
[6세 세종世宗은 태종공苔宗公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지소태후只召太后이다. 진흥대제와 같다. 대제와 같은 배同胞로서 …. 세종전군의 초명은 의종義宗이다. 단아한 아름다움과 멋진 풍채를 가졌다. 태후에게 효성스럽고 대왕에게 충성스러웠다. 대왕 또한 매우 사랑하여 말하기를 “나의 막내아우다” 했다. 항상 곁에 있으며 대왕을 모시도록 했다. 조금도 금지하고 묶어두지 않아도, 공의 타고난 바탕이 극히 좋아 잘못됨이 없었다.] 먼저 화랑세기와 삼국사기(삼국유사와 금석문에서도 교차검증이 된다)에 나오는 ‘세종’과 ‘노리부’에 관해서 짚어본다. 화랑세기에서는 세종과 노리부가 동시대에 산 다른 인물로 나온다. 반면 삼국사기에서는 같은 인물이다. 먼저 삼국사기의 내용으로 본 세종(? ~ 588년), 즉 노리부弩里夫는 이름의 음이고, 세종은 그 뜻이다. 노종奴宗, 노부奴夫, 내부內夫, 내례부內禮夫 라고도 한다. 세종은 가야의 왕족으로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구해왕)이 532년(법흥왕 19년)에 가족을 데리고 신라로 귀순할 때 왔다.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편입되어 이후 신라 조정에서 벼슬을 하였다. 545년 대아찬(5등급)으로 시작하여 551년에는 파진찬(4등급), 568년에는 이찬(2등급)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579년(진지왕 4년)에는 진지왕이 폐위되고, 진평왕이 왕위에 오르자 상대등이 되었다. 551년(진흥왕 12년)에는 나제동맹을 맺은 백제와 함께 거칠부를 필두로 8명의 장수 중의 한명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이에 백제는 한강유역을 수복한 뒤 평양까지 공격하였고, 신라는 죽령 이북의 10개 군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와의 동맹은 깨지고 백제는 577년(진지왕 2년)에 신라를 공격하였다. 이에 노리부는 일선군(현재의 구미시 선산읍 지역) 북쪽에서 백제군을 격파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579년 진지왕 폐위 후 상대등이 된 것으로 보아 폐위사건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으로 보고 있다. 상대등 재임시 중앙의 관제를 다수 정비한 치적이 있다. 그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장남으로 김유신의 큰할아버지이다. 즉 노리부의 동생 무력武力의 아들이 김서현이며, 김유신은 김서현의 아들이다. 위의 내용이 삼국사기에 전하는 노리부(세종과 동일인)의 족적이다. 한편 화랑세기에는 서로 다른 두 인물로 등장한다. 먼저 ‘노리부’, 그는 사도태후의 오라비로 나온다. 사도태후는 진홍왕의 왕비이다. 사도의 부모는 박영실과 옥진이다. 하지만 풍월주 위주로 기록된 화랑세기의 특성상 노리부가 사도와 동부동모의 남매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576년 진흥왕이 사망하였다. 왕후 사도는 대원신통의 대모로서 조카 미실과 공모하여 진흥왕의 둘째 아들 김사륜을 왕으로 옹립했다. 그가 제 25대 진지왕이다. 거칠부를 상대등으로 삼고 사도는 섭정을 하면서 미실을 왕후로 책봉하기로 한 거래였다. 또한 사도의 오라비 노리부와 노동弩同이 실권에 가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지왕은 미실과의 왕후거래를 묵살하고 황음과 주색에 빠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화녀와의 사랑이야기이다. 또한 왕후 지도를 통하여 경쟁 인맥姻脈인 진골정통과 내통을 하자 사도와 미실은 다시 진지왕을 폐위하기로 공모하였다. 579년(진지왕 4년) 미실 일파인 세종과 설원랑은 화랑도를 장악하였고, 사도의 일파인 노리부는 귀족 집단을 장악하면서 진지왕을 폐위시켰다. 그리고 제 26대 진평왕을 옹립하였다. 그가 바로 진흥왕의 장손인 김백정이다. 개에게 물려서 죽은 동륜태자의 아들이다. 다음은 ‘세종’, 삼국사기에서 세종은 금관가야의 왕족으로 나오지만, 화랑세기에서는 지소태후(진흥왕의 어머니)와 태종(이사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즉 진흥왕과 이부동모이다. 그리고 그는 6세 풍월주이며 미실의 남편이다. 지소가 아들 세종을 결혼시키려고 여러 귀족가문의 미녀들을 모았지만 세종은 미실을 가장 좋아하였다. 하지만 지소는 미실이 대원신통이고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았던 남편 박영실의 외손녀이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세종은 굽히지 않았고 이사부의 허락으로 그들은 혼인을 하여 부부가 되었다. 진흥왕의 왕비 사도왕후는 미실의 이모이다. 지소태후가 대원신통인 사도를 내치고 자신의 딸인 숙명을 왕후로 삼아서 진골정통으로 인통姻統을 잇게하려고 하였다. 이를 미실이 알고 사도에게 고했으며 사도는 폐위를 면했다. 이에 노한 지소태후가 미실을 출궁시키고 진종의 딸 융명으로 대신했지만 세종은 오매불망 미실을 잊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눕고 말았다. 이에 지소는 하는 수 없이 미실을 다시 궁으로 불러드려 세종의 아내로 복귀시켰다. 지금부터 6대 풍월주 세종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펼쳐진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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