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67 |
보스톤코리아 2017-02-27, 11:50:08 |
이어지는 김대문의 화랑세기(이종욱 대역), [공은 애통해했다. 공 역시 여위고 병들어 7일만에 죽었다. 금진은 이에 공을 품에 안고 발을 굴르며 말하기를, “나 때문에 너의 마음이 상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어찌 살겠는가?” 했다. 공이 서서히 눈을 뜨고 말하기를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내가 어찌 어머니 때문에 마음을 상했겠습니까? 살아서 어머니의 큰 은혜를 갚을 수 없었는데, 죽어서 저 세상에서 갚겠습니다” 했다. 대개 공은 원래 미진부공의 딸인 미실美室을 사모했다. 미실 또한 공을 좋아했으나, 태후의 명으로 세종공世宗公에게 시집을 갔다. 이로써 태후의 마음을 열었다. … 어머니에게 간하지 않았고 형을 따랐다<형은 숙흘종이다>. 청조가靑鳥歌를 지었다. … 청조는 미실을 가르킨다. 공은…. … 옷과 … 노래를 지어 보낸 까닭이다. 공公…. 낭도들이 이화공을 복립할 것을 청하니, 이화공이 말하기를 “…의 사위이다. 사다함은 …. …여러 골骨 중 세종전군世宗殿君 같은 이는 없다.” …의 무리들이 이에 세종전군을 세워 풍월주로 삼았다.] 사다함은 사우死友로 결의한 친구 무관랑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너무나 애통해 하다가 7일만에 그만 죽고 말았다. 못다 핀 청춘, 용맹하고 도량 깊은 화랑 중의 화랑 사다함의 그때 나이 고작 열일곱살이었다. 화랑세기에는 무관랑의 죽음이 비교적 상세하게 사다함의 어머니인 금진과의 사통에 괴로워하며 월성의 담을 뛰어 넘다가 구지에 빠져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에 삼국사기에는 무관랑이 병들어 죽은 것으로 간단히 기록되어 있다. 사다함의 어머니 색녀 금진은 아들의 죽음에 앞서 자신의 무분별한 색사를 후회했지만 그녀의 색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효성이 깊은 사다함은 죽음의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도 부모의 은혜를 잊지않고 죽어서도 갚겠다고 다짐하였다. 미실, 당대의 절세가인, 사다함의 첫사랑, 그녀는 대원신통의 인맥姻脈과 정략으로 진흥왕 사후 진지왕을 옹립하였고 또한 자신의 ‘왕후거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진지왕을 폐위까지 하였다. 그리고 권력을 쥔 그녀는 화랑도의 풍월주를 없애고 원화제도를 부활하여 스스로 원화가 되기도 하였다. 외할머니 옥진과 할머니 삼엽궁주 그리고 삼엽의 어머니 벽화의 아름다움과 영특함을 타고 났으며 그들의 색훈色訓과 색도色道로 빗어진 미실은 진흥왕과 그의 맏아들 동륜태자 그리고 둘째 아들 진지왕, 손자 진평왕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왕과 귀족들을 색공으로 대원신통의 인맥을 확장하였으며 정계의 중심에서 왕권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둘렀다. 미실이 세종과 결혼하여 입궁하기 전에는 사다함의 연인이었다. 서로의 첫사랑은 지고지순하였다. 하지만 이사부를 따라 가야정벌(562년)에 지원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후 돌아오니 사랑하는 연인 미실은 세종전군의 부인이 되어있었다. 이때 미실에게 지어 마친 노래가 청조가靑鳥歌193) 이다. 미실이 지소태후의 명으로 결혼한 세종, 세종에 관하여 삼국사기(또한 삼국유사에도 교차 검증이 된다)와 화랑세기에는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6세 풍월주 세종편에서 다룰것이다. 먼저 삼국사기의 기록을 보면 세종世宗과 노리부弩里夫는 동일인이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구해)의 장남이며 구형왕이 귀순할 때 신라의 진골 귀족이 되었다. 즉 김유신의 큰 할아버지이다(김유신의 아버지는 김서현이고, 할아버지는 김무혁이며, 구형왕 김구해가 증조할아버지이다). 하지만 화랑세기에는 세종과 노리부가 다른 인물로 나온다. 노리부는 진흥왕의 비 사도왕후의 오라비이다. 즉 두사람이 동부동모라면 박영실과 옥진궁주 사이의 아들이지만 확실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진흥왕이 죽고 진지왕이 즉위할 때 미실과 사도가 밀약으로 진지왕을 옹립하였다. 그 밀약이 지켜지지 않자 이번에는 폐위를 하였다. 그 때 미실파인 세종과 설원은 화랑을 장악하였고 노리부는 귀족 집단을 제압하였다. 그리고 진평왕을 차기 왕으로 세웠다. 세종은 진흥왕의 이부동모異父同母로 나온다. 즉 진흥왕의 부모는 입종(사부지)과 지소이고, 세종의 부모는 태종(이사부)과 지소이다. 193) 청조가, 사다함이 가야정벌에 참전하여 큰 전공을 세우고 돌아오니 사랑하는 연인 미실은 세종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이 때 지어 마친 노래이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마음 아프고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 되리/ 전주에게 날아들어 보호하여 호신되어/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군부처 보호하여/ 만년 천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 이에 앞서 사다함이 가야정벌 위하여 출정할 때 미실이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표현한 노래가 있다. ‘바람이 불다고 하되 임 앞에 불지 말고/ 물결이 친다고 하되 임 앞에 치지 말고/ 빨리빨리 돌아오라 다시 만나 안아보고/ 아흐,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물리라뇨.’ 이 ‘송사다함가’와 ‘청조가’가 화랑세기(6세 풍월주 세종편)에 전하는 두 수의 향가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0] |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
|
프리미엄 광고
161 Harvard Avenue, Suite 4D, Allston, MA 02134
Tel. 617-254-4654 | Fax. 617-254-4210 | Email. [email protected]
Copyright(C) 2006-2018 by BostonKorea.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and Managed by Loopiv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