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22. 두 인디언과 두 백인 (2)
보스톤코리아  2017-01-16, 11:38:36 
찰스 이스트만(Charles Eastman) 부부 (계속)
엘레인도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과 소설을 발행하였다. 엘레인은 그의 친필 원고 등 모든 문학작품을 모교인 스미스칼리지에 기증했다. HBO가 2007년 TV용으로 제작한 영화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에서는 이스트만 부부를 주연으로 그리고 있다.

잭슨 여사
잭슨(Helen Hunt Jackson)의 결혼 전 이름은 피스키(Helen Maria Fiske)이다. 그녀는 매사추세츠 주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1830년 10월 15일 출생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애머스트 대학의 목사 겸 교수이었다. 열네 살 나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삼년 뒤에는 아버지도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다 사망한 후로는 숙부가 그녀를 뒷받침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뉴욕에 소재한 기독교 기숙하교에서 공부하였는데 그곳에서 역시 애머스트 출신인 디킨슨(Emily Dickinson)과 같은 반이 되었다고 한다. 디킨슨은 훗날 시인으로 이름을 크게 날렸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의 인연으로 평생을 교우했다고 한다. 그녀는 1852년에 헌트 대위(Edward Bissell Hunt)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으나 모두 잃었으며 1863년에는 남편도 사고로 사망하였다.

1873년에 그녀는 결핵 치료차 콜로라도 스프링스(Colorado Springs)로 갔는데 그곳에서 부유한 은행가인 잭슨(William Sharpless Jackson)을 만나 1875년에 재혼하였다. 그녀가 글을 쓰기 시작하던 초년도에는 본인의 실명을 숨기고 ‘H.H.’라는 약어 필명을 사용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그녀의 시를 높이 평가하여 시낭송회에서 몇 차례 그녀의 시를 소개하였고 1880년에 발간된 ‘명시 선집’에 그녀의 시 다섯 편을 포함시켰다.

1879년부터 잭슨 여사는 인디언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보스턴에서 있었던 퐁카족 추장 서있는 곰(Standing Bear)의 강연을 듣고 큰 감동을 받고 그 때부터 핍박받고 있는 퐁카족을 위하여 헌신하는 운동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우선 그녀는 정부의 잘못을 조사하여 널리 공표하고 관계기관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기금을 모으고 언론사에 기고하는 일들을 시작하였다. 그녀의 특별 공격 대상은 당시 내무부 장관이던 셔츠(Carl Schurz)이었다. 그녀는 한 때 셔츠를 ‘내가 아는 가장 교활한 거짓말쟁이’라고 할 정도로 심하게 비난했다. 그녀는 미국 정부가 인디언과 맺은 조약을 위반하여 부당하게 인디언의 땅을 가로챈 사실들을 폭로했다. 나아가 인디언 주재관, 군 간부,그리고 인디언 땅을 훔쳐간 백인 정착민들의 부정부패 사례를 공식 문서화했다. 많은 진보적 신문 편집인들이  동조하여 그녀의 보고서를 신문에 게재했다. 잭슨 여사는 자신의 이름으로 1891년 첫 저서를 발행했다. ‘불명예 100년(A Century of Dishonor)’이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서 그녀는 백인들이 밥 먹듯이 조약을 위반해온 역사를 통렬히 비판하고 인디언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하였다. 연방 상하원 의원들에게 이 책을 한 권씩 다 보냈다고 한다.

잭슨은 캘리포니아 남부를 여행하면서 그 곳 인디언들의 어려운 사정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내무부의 조사관으로 임명되어 캘리포니아 남부를 돌면서 수많은 인디언 부족들의 생활실태를 파악한 후 1883년 56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서 그녀는 인디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땅을 사서 인디언 보호구역에 편입시켜 주고 인디언 학교를 더 많이 설립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상원에서는 통과가 되었으나 하원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그녀의 제안을 법제화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잭슨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도록 만들기 위하여 인디언 관련 소설을 하나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의 친구인 스토우 부인(Harriet Beecher Stowe)이 1852년에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이 심각한 주제의 책은 잘 안 읽을 테니까 로맨틱한 주제를 가지고 흥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어 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흑인들에게 기여한 것의 100분의 1만큼만이라도 인디언들에게 보탬이 됐으면 하는 게 그녀의 간절한 소망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883년 말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석 달 만에 완성하여 처음에는 ‘In The Name of The Law’의 제목이었으나 뒤에 주인공의 이름을 따 제목을 ‘Ramona’로 바꾸어 출판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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