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뫼비우스의 띠
보스톤코리아  2016-12-22, 18:37:35 
  어느 해인들 격동의 세월이 아닌적이 있었나. 어느 달이건 질풍노도와 같지 않은 달이 있었던가. 어느 세모歲暮건, 착찹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12월말 감상에 젖기에 알맞는 때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째 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오광수, 12월의 독백 중에서)
    
  까치의 설날인 그믐날엔 가래떡을 만들었다. 불린 쌀을 이고, 어머니는 방앗간으로 갔다. 심심하던 어린 내가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리 없다. 어머니를 졸래졸래 따라갈 적에, 백열구 등밑엔 검은 방아기계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덜컹이는 기계소리는 더운 수증기와 뒤엉키고 섞였다. 기계 앞엔 다라이가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렸다. 가래떡이 쉬임없고 끊임없이 뽑혀 나왔다. 흰색 가래떡은 김을 뿜어내고 있었고, 떡냄새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묻혔다. 우리 떡은 언제 뽑나 기다릴 적이다. 새삼 쳐다본 가래떡 기계에는 피댓줄이 걸려 힘겹게 돌아가고 있었다. 낡고 거무튀튀했는데, 벨트를 따라 기계와 기계는 연결되어 작동되는 듯 했다. 어른 바지의 단마냥 넓은 벨트는 인부의 팔뚝 힘줄처럼 강인해 보였고, 벨트는 특이하게 꼬여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가보다 했다. 내가 궁금증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피댓줄이 꼬인 이유를 한참 뒤에 알았다. 한번 꼬아서 연결하면, 벨트의 앞과 뒷면이 골고루 닳는다는 거다. 뫼비우스 띠 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방아간에선 뫼브우스의 원리를 알지 못해도 어렵지 않게 방아기계는 돌아갔다. 뫼비우스 띠는 리사이클 표식으로 쉽게 보여진다. (그림 참조: 뫼비우스 띠가 무슨 원리인지 몰라도 된다. 그저 그런게 있나 하시라. 궁금하면 구글링 해보시라.) 

  뫼비우스의 띠에도 앞뒤가 없듯, 세월에도 앞뒤가 없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작년과 다름없이 세모가 다시 닥쳤다. 해마다 연말과 연시는 분명 다른 시간일 텐데, 지구는 태양을 돌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 터.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바퀴 돌았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지구는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데, 세월도 리사이클 할 수 있을까?

  오늘이여 내년 이맘때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나세. 지구도 한살을 더 먹고 나면 어김없이 내년에 다시 이 자리에 설테니 말일세. 나이만 한살 더 먹을 거라 서글퍼 마시고, 병신丙申년이여 안녕. 떡방아간 기계는 오늘도 돌아가는가? 

메리크리스마스!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요한 6:24)

  피댓줄 (皮帶-); 벨트 (네이버 사전). 예전엔 벨트를 그렇게 불렀다. 
 뫼비우스의 띠: 경계가 하나밖에 없는 2차원 도형으로, 띠의 안과 밖의 구별이 없다.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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