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장전 (Bill of Rights) |
보스톤코리아 2016-12-19, 14:17:30 |
225년 전 오늘인 1791년 12월 15일, 버지니아의 비준을 마지막으로 당시 미국 헌법의 처음 10개의 수정 조항을 담고 있는 <권리장전 Bill of Rights>이 미국 헌법의 일부가 되었다. 권리장전 (수정헌법 1조~10조)의 내용은 연방 정부가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각 주의 권한을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명시한 수정 헌법 제 1조는 국민의 기본권에 관한 내용으로, 종교의 자유, 언론 및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담고 있다. 식민지 시절 남부의 식민지는 영국 왕실의 영향이 컸던 만큼 성공회(영국 국교회)가 공식 종교였으며, 청교도들이 주축이 되어 종교의 자유를 추구하며 건설한 뉴잉글랜드는 청교도 외의 종교 및 분파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었다. 즉, 그들의 종교에 한해서만 자유로웠다. 그러므로 ‘정교 분리’의 원칙을 드러내고 있는 수정헌법 1조는 식민지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사회를 제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수정헌법 1조의 다른 세부 조항 역시 식민지 시대, 특히 독립 혁명의 전야에 있었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다. 가령, 식민지 정부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저항이 격화될 수록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등이 제한이 되었었던 것. 하지만 수정헌법 1조는 “자유를 보장한다”가 아니라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을 만들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수정헌법 제 1조가 못박은 개인의 기본권으로서의 자유는 무제한으로 보장되는 자유라기보다는 국가와 법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도록, 즉 국가의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였다. 보통 “무기 소지의 자유”로 요약되는, 그리하여 전미 총기 협회 (NRA)의 든든한 아군이 되는 수정헌법 제 2조 역시 독립 혁명의 유산이다. 독립 전쟁 발발기, 식민지에는 정규군이 없었다. 즉, 자체적으로 조직한 민병대들이 전투를 치렀다. 이러한 맥락에서 수정헌법 2조는 이렇게 기술된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State)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게다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토의 상당부분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개척지였던 만큼 개인의 안위를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지지 못했고, 따라서 개인이 개인의 안전을 위해 무기 소지를 하는 것은 다소 자연스러운 권리로 여겨졌다. 수정 헌법 3조를 탄생 시킨 맥락도 식민지시대의 경험이다. 영국은 1765년과 1774년 숙영법 (Quartering Act)을 통과시켜 식민지에 주둔하는 영국군의 숙박과 식사를 민간이 제공하도록 했다. 그 논리는 영국군이 식민지의 보안을 위해 파견된 만큼, 그로 인한 비용은 식민지인들이 제공해야한다는 것이다. 수정헌법 3조는, 전시 상황이 아니라면 주인의 허락 없이 군인이 민간인의 주거지에 거처할 수 없으며, 전쟁시에도 법이 규정한 곳을 제외하고는 민간인 주거지를 점령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수정 헌법 4조는 사생활에 대한 권리와 불심검문 금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불합리한 압수와 수색에 대하여 신체,주거,서류,물건의 안전을 확보할 국민의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아니된다.” 식민지 시절에는 역시 지켜지지 않았던 자유다. 독립 혁명 이전 시기, 식민지 상인들의 밀수를 단속하기 위해 영국군은 불시에 상인들의 주거지를 수색했었다. 수정헌법 5조는 남북전쟁 이후 비준되는 공소 제기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심문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적법절차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와 함께 일사부재리의 원칙, 자기부죄 (자신에 대한 증인이 될수 없다)의 원칙 등도 수정헌법 5조의 내용이다. 수정헌법 6조와 7조, 8조는 피고인으로서 재판을 받게 될 경우 인권에 대한 내용으로서, 형사절차상의 피고인이 배심원단에 의해 신속하고 공개적으로 재판을 받을 권리, 배심원단에 의한 민사재판을 받을 권리, 보석금과 잔혹한 처벌을 금지 조항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1960년대, 범죄 용의자가 체포되거나 조사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위해 국선 변호인을 선임할 수도 있고, 그러한 권리에 대해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다는 일련의 대법원 판결이 미란다 원칙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수정헌법에서 명시되어 있던 적법절차의 원리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수정헌법 9조는 흥미로운 조항이다. “헌법에서 특정 권한의 열거는 국민에 의해 보류된 타인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도록 해석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함으로써, 헌법상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를 국가나 의회가 가져갈 수 없다, 혹은 개인은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도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디까지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어도 누릴 수 있는 권리인지는 여전히 애매한 문제이며, 수정헌법 9조가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은 현재까지 없었기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수정헌법 10조는 연방의 권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연방이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으로 각주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권리장전을 비준하기까지 연방의 더 큰 권한을 주장하던 연방주의자들과, 각 주의 권리를 중요하게 여기던 반연방주의자들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진통 끝에 만들어진 권리장전은 독립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건국 작업을 마무리 짓는, 그리고 “합중국”인 미국이라는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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