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57 |
보스톤코리아 2016-12-12, 13:13:10 |
이어지는 화랑세기, [나이 12살에 문노를 따랐는데 격검에 능했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좋아했고, 아버지보다 큰 풍모가 있었다. 낭도들이 서로 일러 말하기를 “구리지공의 음덕으로 받은 복이다” 했다. 사다함은 밖으로 굳세고 안으로 어질었고 우애에 독실했다. 비록 설성에게는 거역했으나, 어머니를 섬기는 효도는 지극했다. 금진 또한 이로써 가장 …했다. 매번 4절節을 맞아 ?유택?에 들어가 … 을 하도록 … 했다. 제帝는 사다함이 춤을 잘 추는 것을 알고 … 금진은 짝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고 사랑(幸)을 받고 돌아 왔다. … 스스로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사랑을 하지 않고 돌아 와도 …. …울며 …. 금진이 묻기를 “…에게 사랑을…” 했다. 사다함이 말하기를 “어머니와 더불어 임금이 짝이 되었으니 아들이 어찌 영광이 아닙니까?” 했다.] 이 구절도 탈자가 많아서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지만 몇 가지를 짚어볼 수가 있다. 먼저 문노는 신라에서 무예와 검술이 신기에 이르렀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화랑이다. 문노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8세 풍월주 문노’ 편에서 다룰 것이다. 그리고 효성이 아주 지극했던 사다함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가 독산성 전투에서 전사한 후 어머니 금진은 구리지의 용양신이었던 설성과 함께 살았다. 정확한 연유는 알수 없지만 사다함은 설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금진은 진흥왕의 총애를 받으면서 자주 왕이 베푸는 연회에 초대되어 가무를 즐김을 볼 수 있다. 위의 사절유택은 아마도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사절유택인 왕의 별장으로 보인다. 봄에는 동야택東野宅, 여름에는 곡량택谷良宅, 가을에는 구지택仇知宅, 겨울에는 가이택加伊宅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당시 신라에 35채의 초호화 개인주택인 금입택金入宅 있었다며 하나하나 주택의 명칭까지 기록하고 있다(실제로 기록된 금입택의 수는 39채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다만 재매정택財買井宅에 대해서만 김유신의 종가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유신공조종庾信公祖宗). 이렇게 삼국유사는 39채의 금입택의 이름을 다 나열하고 있지만 재매정택을 제외하고는 이 호화주택의 주인이나 위치, 규묘나 배치의 기록이 없다. 그런데 ‘화랑세기’에는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입택 중 한 채인 수망택水望宅이 유일하게 등장한다. 17세 풍월주인 염장廉長(586~648)이 살았던 초호화 주택이다. 염장은 지도태후知道太后와 천주天主의 아들이다. 지도는 제25대 진지왕의 왕비였다. 진지왕은 폐위되고나서 3년 후에 죽었다. 그리고 지도는 진흥왕의 아들인 천주와 정을 통해 아들을 낳으니 그가 염장이다. 천주의 어머니는 진흥왕의 후궁 월화궁주이다. 월화는 아버지가 가야의 이뇌왕이고 어머니는 신라의 양화공주이다. 염장은 이름과는 반대로 재물의 욕심이 과하여 많은 사취를 했다. 대단한 재력가로 묘사되어 있다. 15세 풍월주인 김유신(595~673) 아래서 부제로 있다가 17세 풍월주를 6년 동안 역임했다. 그리고 김춘추에게 풍월주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16세 풍월주인 보종공의 집안 일을 돌봐주면서 재물을 끌어 모았다고 한다. 그의 재산이 화랑세기에는 “당시 사람들이 공의 집을 가리켜 수망택水望宅이라 했는데 금金이 들어가는 모습이 홍수와 같다고 해서 이른 말이다” 라고 묘사되어 있다. 39채의 초호화 금입택 가운데 현재까지 주인이 밝혀진 주택은 2채이다. 김유신의 종가와 염장의 사저이다. 나머지는 주택의 명칭으로 위치를 조금 알 수 있다. 또한 보리공(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의 집과 김흠순(김유신의 친동생)의 집이 금입택이었는지는 몰라도 화랑세기에는 그들의 집 구조를 조금 설명하고 있다. 먼저 그 이름이 나타내는 금입택의 위치를 본다(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 김태식, 김영사, 제1장 참고). 먼저 신라의 호화주택에서는 우물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 김유신의 종가 이름이 재매정택인 것은 재매정이란 우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상택井上宅은 우물 위쪽에 위치한 금입택일 것이고, 지택池宅은 연못을 갖춘 호화주택일 것이며, 지상택池上宅은 연못 위쪽에 자리한 저택일 것이다. 신라인들이 우물을 신앙처럼 받들었음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건국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지가 나정蘿井이라는 우물이고, 그의 비 알영도 사량리의 알영정閼英井이라는 우물에서 용의 오른쪽 갈비대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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