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흙속에 저 바람속에 |
보스톤코리아 2016-10-24, 11:42:53 |
가을이 깊어 간다. 내게 가을은 바람이다. 가을바람이 설렁 불적에, 단풍잎도 소리내어 흔들린다. 이는 바람에 한창인 붉은 잎사귀가 떨어질까 아쉽다. 책을 자주 잃어 버린다. 아무리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도 나오지 않는 거다. 이사 갈 때 눈에 띄일지 모르겠다. 질레트의 이사移徙의 법칙이라던가. ‘지난 번 이사 때 잃어 버린 물건은 다음 이사갈 적에 다시 나타난다.’ 라 했다. 내가 업그레이드 한다. ‘잃어 버린 책은 다음 이사갈 적에 나타난다.’ 그렇다고, 책을 찾으려고 이사가고 싶지는 않다. 오래 전부터 다시 읽고 싶던 책을 구했다. 이어령교수가 썼던 책이다. ‘흙속에 저 바람속에.’ 만나는 순간, 너무 반가워 가슴까지 울렁였다. 수십 년 전에 읽었고, 충격과 전율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열일을 제치고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아아,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저장된 파일에서 되살아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읽을 적에, 차마 웃을 수 없어 가슴아팠던 구절이다. 서문에 나온다. ‘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 했지만…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다시 집으려고 뒷걸음 친다. 하마터며 그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다.’ 이 글은 1960년대 초반에 발표되었으니, 늙은 부부는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일게다. 노부부는 흙속에 묻혀 살던 농군과 그의 아내 였을 것이다. 내 어릴 적 동네 동무 이야기도 나온다. ‘ 한국의 아이들은 대개 팔과 다리에 비해 배가 크다. 참외씨나 수박씨가 묻어 있는 벌거벗은 아이들의 그 장구배야 말로 우리 우수憂愁의 상징인 것이다. 위확장胃擴張에 걸린 한국의 아이들은 푸른 하늘을 나는 새를 보아도 좀처럼 동심을 깨우려 하지 않는다.’ 배가 고픈데 뭐 동심이겠나. 퀭한 눈에 부황든 검은 얼굴일텐데 무슨 푸른 하늘이란 말이냐. 이십대 젊은 이어령은 아픈 부분을 제대로 찔렀다. 살만 해졌고 먹을 걱정이 줄었어도, 찔린 부위은 여전히 아프다. 못 먹어 슬픈 눈을 가졌던 내 동무는 어디서 무엇이 되었을까. 밥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단다. 나도 세계도 놀랐다. 그의 노래중, ‘Blowing in the wind’ 의 마지막 구절이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대답은 바람속에 있네.) 노래를 다시 들을 적에 감정은 같은 듯 다르다. 같은 감동과 전율이 되살아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책도 노래도 글쓴이와 노래가 얼추 비슷한 나이에 읽고 들어야 하는 모양이다. 하긴 다를수 밖에 없다. 충격은 바람이 데려간 것인가. 흙속에 묻힌 것인가.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세월도 데려갔으니 말이다. 바람아, 네가 알고 있느냐?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마가 4:39)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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