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43 |
보스톤코리아 2016-09-07, 11:49:47 |
[그때 동륜공이 점차 장성했는데, 대왕이 보익하는 사람이 없음을 염려하여, 토함으로 하여 보익하도록 했다. 토함이 말하기를 “이것이 나의 임무이다” 했다. 이에 화랑의 지위를 아우에게 넘겨주었다. 공은 이에 사다함을 부제로 삼았는데, 그를 사랑함이 토함과 같았다. 그때 사람들이 공이 인재를 얻었음을 축하했다. 얼마 안 있어 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사다함이 종군을 청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동륜은 진흥왕과 사도왕후의 장자로 태어났지만 왕위를 잇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색사를 좋아하면서 부왕의 후궁까지 넘보았다. 어느날 진흥왕의 후궁 중의 한명인 보명궁주의 궁을 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동륜은 566년 어린나이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느 사서에도 출생년도의 기록은 없다. 다만 어릴때 태자로 책봉된 것과 일찍이 색사를 좋아하여, 월성의 또 하나의 ‘난봉꾼’인 미생(미실의 동생)의 무리들과 어울려 놀면서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인 보명궁주와 상간하였다. 어느날 혼자서 담을 넘다 그만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그 해가 572년이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그의 출생년도가 555년에서 560년 사이이다. 진흥왕 당시 월성에는 사도思道, 미실美室, 보명寶明, 옥리玉理, 월화月華 등 다섯 궁주가 있었다. 각 궁주는 왕후인 사도처럼 독립된 궁에서 거처했으며 물론 모두가 진흥왕의 여자들이었다. 미실은 궁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다함의 연인이었다. 그래서 562년 사다함이 화랑도의 부제로서 가야정벌에 나섰을 때 연인을 선뜻 보내지 못하는 미실의 노래 ‘송사다함가’ 가 우리의 향가로 전해 오고 있다. 그리고 사다함이 승전을 하고 돌아왔을 때는, 미실은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지소태후의 또 다른 남편(태종 이사부)의 아들인 세종의 아내로 입궁해 있었다. 남의 아내가 된 연인 미실을 잊지 못하고 부른 노래가 ‘청조가’ 이다. 또 한 수의 향가로서 화랑세기에 전하고 있다. 그리고 동륜이 죽을 무렵에는 미실은 이미 진흥왕의 후궁이 되어 있었고, 동륜태자와도 색사를 즐기고 있었다. 미실과 보명은 진흥왕의 후궁이면서도 차기 왕이 될 동륜에게 색공을 하고 있었으며, 먼저 시작한 미실이 자신의 행실이 탄로가 날까봐 동생 미생을 시켜서 동륜태자를 보명에게로 ‘유인誘引’ 하였으며, 또 다른 부왕의 후궁 보명궁주에게 빠진 태자는 그녀의 치맛폭을 잊지 못하고 월담을 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이 사건으로 미실의 음행도 탄로가 나서 그녀는 출궁되었고, 원화인 미실이 이끌던 화랑의 직제도 대폭 개편되면서 풍월주 만의 수장제도에서 국선의 등장을 예고하였다. 비록 미실은 출궁 당했지만 그녀의 타고난 미색을 그냥 그렇게 초야에 묻혀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 색사와 색공의 파노라마로 월성의 뭇사내들을 핑크빛으로 물들게 하였다(미실의 이야기는 앞으로 여러대의 풍월주들과 함께 이어갈 것이다). 문노가 500명의 낭도를 데리고 합류하면서 사다함의 세력은 한층 확장되었고, 동시에 진흥왕이 어린 나이에 태자로 책봉된 동륜의 안위를 염려하여 풍월주에 버금가는 토함으로 하여금 보익하도록 하면서 토함은 모든 화랑의 지위를 동생인 사다함에게 넘겨주고 태자의 보익에만 전념하였다. 결과적으로, 형 토함의 낭도들까지 인수한 사다함은 풍월주 다음가는 화랑도의 부제가 되었다. 그리고 가야정벌에 종군하여 승리하면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였고, 형은 진흥왕의 명으로 태자 동륜을 보익하다가 동륜이 ‘개죽음’ 을 당하면서 역사의 뒷문으로 사라졌다. 화랑세기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옛이야기이다. 그들 형제는 구리지가 아버지이다. 구리지는 뒷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이름이 구리지이다. 구리지의 아버지 비량공은 비처왕(소지왕)의 후궁인 벽화부인과 측간에서 사통을 하여 구리지를 낳았다. 벽화부인은 비처왕이 날이군(현 경북 영주)으로 순시를 나갔다가 만난 후 그녀를 잊지 못하여 월성에서 날밤을 지세우다 데려온 당대 신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의 한 명이었다. 벽화는 변방을 지키는 군인 파로의 딸이었다. 사다함의 할아버지 비량공은 마복칠성 중의 한 명이다. 마복칠성은 마복자 중에서도 가장 신분과 지위가 높았다. 마복자는 어머니가 임신 했을 때 왕이나 상관과 성관계를 하고 태어난 아들을 가르킨다. 그러니까 묘양이 비량공을 임신했을 때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옥경이 가장 크다고 기록된 지증왕과 배를 맞추었다는 말이다(마복은 배를 문지른다는 뜻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사절요,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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