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어머니 등에 업히다
보스톤코리아  2016-08-22, 11:25:05 
  전화를 받은 아내가 말했다.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듯 했다. 하지만 목은 이미 젖어있어 슬쩍 갈라져 있었다. 그렇게 통곡했다더니 아직도 눈물은 마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 눈물까지 가져갔다.  얼핏 어머니의 등에서 풍기던 엷은 땀냄새가 스쳐 지나갔다. 

  꽃비는 봄에만 오는 건 아니다. 달빛도 자주 꽃비되어 맑고 차갑게 흩어져 쏟아져 내린다. 그 날 밤 내가 봤던 달빛이다. 어린 나는 젊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있었다.  달빛은 차가웠는데, 어머니 등은 마냥 따뜻했다. 그 위로 달빛은 꽃비되어 쏟아져 내렸다.

  달빛은 너무 밝아 환했다. 리듬감을 얹은 중년 어머니의 발걸음은 씩씩했다. 등에 업힌 어린 나는 서늘한 기운에도 무섭지 않았다. 걷는 모자母子의  짧은 그림자가 오히려 경쾌하게 박자 맞춰 출렁였다. 어머니의 등에서 엷은 땀냄새가 났을테고, 어머니의 냄새였을 것이다. 태고의 어머니 뱃속에서 안락함이었고, 평안함이었다. 아아, 어머니.

  그 날 일기예보는 최고가 섭씨 36도라 했다. 아이쿠. 36도라면 체온과 거의 같다. 몸안과 몸의 바깥은 온도로 상호 교류하는 것이고, 더운 공기는 몸속으로 파고 드는거다. 덥다 덥다 한다지만, 이렇게 더운건 처음인 듯싶었다. 그나마, 어머니의 체온과 내 체온은 같아졌는데, 그건 어머니의 체온이 내게 전도된 착각이었다. 그 날 업힌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의 온기가 옮겨온 것 처럼 말이다.  

  팔십종수八十種樹. 팔십이 넘어 몸은 늙었어도 나무를 심는다는 말이다. 심은 나무가 열매를 맺기 전에 이 세상을 뜰 수도 있을 게다. 그렇다 할지라도 나무를 심는다는 말이다. 맺힐 열매는 누군가 후손이 먹게 될테니 말이다.  

  어머니. 어머니께서 뿌린 씨앗이 이젠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에선 봄이면 꽃이 피고 꽃은  비가 되어 내립니다. 그날 밤 달빛처럼 꽃비가 정신없이 쏟아져 내립니다. 어머니가 손수 심은 나무 고이 키우겠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한 줄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넒은 사랑)

  어머니의 등을 타고 들리던 말씀이 웅웅인다. ‘이제 얼추 다 왔다.’ 업힌 아이를 추스리며 하던 말씀이다. 그런 어머니를 다 커서까지 한번도 업어 들이지 못했다. 어머니 평안하십시요.  이제 다 왔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잠언 31: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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