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6. 기숙학교를 통한 인디언 동화정책 (5) |
보스톤코리아 2016-07-25, 11:55:08 |
짐 소프(Jim Thorpe) (계속) 소프가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11년부터이다. 당시 NCAC(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미국전국대학체육협회) 최고의 팀으로 인정받고 있던 하버드대학 미식축구팀을 칼라일이 18대 15로 눌렀는데 18점 모두를 소프가 한 번의 터치다운(touchdown)과 네 번의 필드골(field goal)을 성공시켜 얻어냈던 것이다. 1912년에는 칼라일이 소프의 맹활약에 힘입어 전국 대학 챔피언에 올랐다. 그 해에 올림픽에 출전하여 2관왕이 되었으나 몇 년 전 여름방학 동안 프로 야구팀에서 아르바이트 선수생활을 하면서 약간의 급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아마추어 자격이 상실되어 올림픽 금메달을 박탈당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소프가 죽은 지 30년이 되는 1983년에 소프의 메달 수상자 지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소프가 프로선수로 분류된 후 1913년부터 1919년까지 프로야구팀에서 활동하였으며 동시에 프로 미식축구팀에서도 선수와 코치로 활약하여 1928년 그의 나이 41세로 은퇴할 때까지 대단한 성적을 올렸다. 1920년에 결성된 NFL(National Football League)의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그는 또한 프로 농구선수로도 잠시 활동하였다고 한다. 선수생활을 그만둔 뒤 그의 후반기 인생은 어려운 시간이 계속되었다. 여러 직장을 전전했지만 벌이는 신통치 않았다. 그는 몇 편의 서부 영화에서 인디언 추장역할의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건설노무자, 외항선선원 등으로도 일했다. 만년에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으며 1953년에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Buffalo Bill's Wild West) 라코타 인디언들이 리틀 빅혼 전투 등 일부의 전투에서는 미군에 이겼지만 인디언 전쟁이라는 큰 틀에서는 완전히 패하여 환경이 지극히 열악한 좁은 인디언보호구역 안에서 전쟁 포로처럼 연금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에 한 가닥 희망은 칼라일학교와 버펄로 빌의 와일드 웨스트 쇼(Buffalo Bill's Wild West)이었다. 쇼의 책임자인 버펄로 빌은 파인릿지에 거주하는 라코타 인디언들에게 자신의 쇼에 출연할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출연한 인디언들에게는 백인과 꼭 같은 조건으로 대우를 해주었다. 쇼 단원이 된 인디언들은 미국 내의 주요도시와 유럽으로 순회공연을 다니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는데, 이런 영향으로 자녀들을 칼라일학교로 많이 보냈다. 버펄로 빌의 본명은 윌리엄 프레드릭 코디(William Frederick Cody)로서 캔사스태평양철도회사(Kansas Pacific Railroad)에 버펄로 고기를 납품하기로 계약을 맺게 되어 버펄로 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한다. 빌은 1846년 아이오와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릴 때에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10대 중반에는 특급우편배달제도인 포니 익스프레스(Pony Express)의 기수 생활도 하였다고 한다. 17세가 되던 1863년에 입대하여 1865년에 제대하였다. 1868년부터 1872년까지 인디언들을 찾아다니는 미군의 정찰병 생활을 하였는데 이 기간 중에 미군과 철도회사에 고기를 납품하기 위하여 수많은 버펄로를 죽였다고 한다. 그는 8개월 동안 4,280마리의 버펄로를 사냥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872년 1월에는 러시아 왕자(Grand Duke Alexei Alexandrovich of Russia)가 버펄로 사냥 여행을 왔을 때에 안내역할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버펄로 빌은 1873년부터 10년간 서부를 주제로 한 쇼에 출연하다가 1883년에는 자신의 쇼(Buffalo Bill’s Wild West)를 직접 제작하였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는 인디언이야말로 사라져가는 종족(vanishing race)으로 인식되어 이들이 역사에서 없어지기 전에 그들을 직접 만나보고 인디언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편 라코타 인디언들은 자신의 전통과 문화를 백인들에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이 쇼를 이용했다. 이때부터 와일드 웨스트 쇼는 30년간 미국 전역을 돌고 여러 차례 유럽순회 공연을 가졌다. 교황도 만나고 여러 나라의 왕들도 만나게 되었고 빌 코디는 일약 세계적인 명사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빌 코디는 인디언에 대하여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빌은 인디언의 전통문화는 유지 발전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인디언과 백인간의 갈등은 백인들이 약속과 조약을 안 지키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늘 말했다. 라코타 인디언들은 미국의 정책에 따라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전통 춤이나 종교의식을 마음대로 행할 수 없는 시절에도 서부 쇼에 출연하여 마음껏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었으며 이러한 출연기회를 그들의 전통을 더욱 갈고 닦는 데에 활용하였다. 시팅불도 잠시 이 쇼에 출연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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