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마약 전쟁사
보스톤코리아  2016-07-11, 13:35:23 
테러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빈곤과의 전쟁…처럼 특정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정책적 의지는 종종 "전쟁"이라는 은유를 통해 나타나곤 한다. 1971년 6월, 닉슨 대통령이 처음으로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도 미국 사회에서 마약을 뿌리뽑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반영이었다. 이때 닉슨은 마약을 "공공의 적 1호"라고 규정했다. 

이에 앞선 1969년 7월 닉슨의 의회 특별 연설은 그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 연설에서 닉슨은 1960년에서 1967년사이에 마약이 연루된 청소년 범죄 혹은 조직범죄의 숫자가 극적으로 증가했다는 통계를 내보이며, 마약 남용이 "심각한 국가적 위협"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닉슨은 주정부차원의 그리고 연방정부 차원의 마약 방지 정책이 필요하다며 대중의 관심을 촉구했다.

1970년, 닉슨과 만난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마약과의 전쟁에서 홍보대사 역할을 자임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비틀즈가 LSD 사용을 부추긴다고 은근히 비판했다) 이 무렵부터 마약 단속 인원이 크게 늘었으며, 1973년에는 정식으로 마약 단속국 (Drug Executive Administration)이 출범했다.

닉슨이 걱정했다시피, 60년대를 거치며 마약 사용자는 크게 증가했다. 그 배경으로 당시에 등장한 반문화 (Counterculture)의 흐름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기성 세대의 획일적인 가치관과 도덕, 혹은 보수성을 거부하고, 기존 질서의 억압 혹은 위선에 대해 냉소하는 한편, 나름의 대안적 문화, 공동체, 개성등을 추구하는 이른바 반문화의 흐름이 등장했다. 사실 반문화의 물결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가령 베트남 신좌파(New-left)의 저항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의미에서 반문화의 한 축이었다. 하지만 반전, 평화, 사랑을 노래하던 자유로운 영혼들, 일명 꽃의 아이들(Flower Children)이라 불리는 히피 들의 "일탈"이야말로, 60년대 반문화의 상징이라고 하겠다. 바로 그 히피들의 문화속에서LSD 같은 환각제는 의식의 해방과 극도의 쾌락을 경험하게 해주는,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물질 같은 의미도 있었다. 또한 당시 '반문화권' 젊은 층들이 즐겨피우던 마리화나는 히피의 상징적인 냄새가 되었다. 

히피들은 자본주의적 질서에 편입하느니 가난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고,  서구의 지배적인 종교인 기독교 대신 '동양적인' 명상이나 불교를 추앙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거의 대부분 미국 사회의 주류라고 불릴법한 백인-중산층-개신교 가정 출신 젊은이들이었다. 아이비리그의 교육을 받은 이들도 제법 있었다. 히피적 생활양식은 사실 먹고 사는 문제가 달린 생존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피들이 짧게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마약에 탐닉해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그들이 그토록 독립하고 싶어하는 부모들의 경제적 기반덕이었을게다.

어쨌거나 부모세대의 관습과 가치관을 통째로 부정하는 자녀들은 여러 모로 주류-기성 세대를 당황스럽게도했다. 게다가 부족함 없이 자란 자녀들이 거리에서 약에 취해 있는 모습이란, 기성세대에게 이해할수도 이해 해서도 안되는 현상이었다.  마약과의 전쟁은 분노한 기성세대의 큰 호응을 얻었고, 마약 문제에 대한 단호한 입장은 1972년 닉슨이 재선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마약과의 전쟁 어딘가에는 확실히 닉슨의 정치적 계산이 작동한다. 당시 베트남전은 교착상태였다.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지만, 이제와서 빠져나올 명분도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징집대상이 속한 젊은 층 사이에서는 반전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바로 그 때, 마약과의 전쟁은 여론의 초점을 베트남전에서 마약과의 전쟁으로 돌려버릴 기제가 되었다. 

물론, 마약전쟁은 사회적 문제인 마약을 퇴치하는 데에 그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닉슨이 다른 어떤 마약보다도 마리화나 퇴치에 공을 들였다는 사실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가령1970년 초반, 닉슨은 마리화나 및 약물 남용 전국 위원회(National Commission on Marihuana and Drug Abuse)를 설치하고 펜실베니아 주지사를 지낸 레이먼드 쉐이퍼(Raymond Shafer)를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마약 특히 마리화나의 위해성, 특히 폭력 범죄와의 연관성을 조사하게했다. 

사실 쉐이퍼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닉슨의 당초 의도를 비껴갔었다. 1972년 쉐이퍼 위원회는 마리화나는 폭력성과 직접적 연관성을 가지지 않으며, 마리화나 문제는 법적 처벌보다는 사회적 차원의 해결이 더 효과적이며, 마리화나 소유를 비범죄화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쉐이퍼 위원회의 리포트가 닉슨의 "마약과의 전쟁"의지를 꺾지 못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닉슨 행정부에서 마리화나는 가장 위험한 약물인 스케쥴 1으로 분류되었다. 쉐이퍼 위원회의 권고와는 정반대로, 마리화나 소지는 법적으로 처벌되는 범죄가 되었다.

왜 무엇보다도 마리화나였을까? 반전집회에서는 히피들과 대학생들이 저항의 상징처럼 마리화나를 피우곤 했다. 그러므로 마약과의 전쟁은, 특히 마리화나에 대한 강경책은 반전여론을 펼치는 젊은층의 의견을 모두 싸잡아 "위험하고, 철없는 약쟁이들이 하는 헛소리"로 취급해버리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닉슨은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 사임했고, 베트남전은 끝났다. 방황하던 히피들은 중산층 부모들의 품으로 돌아갔다. (닉슨이 사임할 무렵, 마리화나에 대한 처벌도 어느정도 완화되기 시작했다) 마리화나를 피우는 반전집회도 없고, 집단으로 LSD를 복용하는 히피들의 축제도 사라졌고, 무엇보다도 마약과의 전쟁을 이끌던 닉슨도 더이상 대통령이 아닌 미국. 마약과의 전쟁은 그렇게 끝났을까? 그럴리가! 
(다음 주에 계속)


보스톤코리아 칼럼리스트 소피아
소피아 선생님의 지난 칼럼은 mywiseprep.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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