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4. 제로니모와 나바호의 천리 길 (6)
보스톤코리아  2016-05-23, 12:14:52 
아파치 인디언의 최후
아파치 인디언에 관한 악의적인 신문 보도를 그대로 믿었던 당시 클리블랜드 대통령은 제로니모 일당을 교수형에 처할 생각이었다. 아파치 인디언들이 당한 과거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들은 극형은 면할 수 있었다. 아파치 포로들은 플로리다의 펜사콜라(Pensacola)에 있는 피킨스 요새(Fort Pickens)에 수감되었고, 그 가족들은 세인트 어거스틴(St. Augustine)에 있는 마리온 요새(Fort Marion)에 수감되었다. 마리온 요새는 17세기 후반에 스페인 군대에 의하여 건설되었는데 스페인 시절에는 산 마르코스 성채(Castillo de San Marcos)로 불렸다. 그들은 열차의 가축수송용 화물칸에 태워져 플로리다로 갔는데 가는 도중에 두 명(Massai와 Gray Lizard)이 세인트 루이스 근처를 지날 때 열차에서 뛰어 내려 1900km를 걸어서 애리조나로 돌아갔다고 한다. 제로니모 무리뿐만 아니라 제로니모를 잡으러 갔던 용병을 포함하여 수많은 치리카우아 인디언들이 플로리다 감옥에 투옥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부모에게서 떼어내어 펜실베이니아에 있던 칼라일 기숙학교(Carlisle Indian Industrial School)로 보냈다. 심지어 에스키민진을 포함한 40명의 아라바이파 아파치들도 플로리다로 끌려갔다. 제로니모 무리들은 1887년 5월에 앨라배마의 Mount Vernon Barracks로 이감되었다가 1894년에는 다시 오클라호마의 실 요새(Fort Sill)로 옮겨 갔다. 

아라바이파 부족은 수감생활을 끝내고 옛 주거지역이었던 산 카를로스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치리카우아족은 워낙 백인들의 미움을 사서 애리조나로 돌아가지 못하고 메스칼레로족의 거주지역으로 일부가 돌아오고 또 일부분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던 오클라호마 지역에 남아 있기를 원하였으나 거주공간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아파치족과 별로 사이가 안 좋았던 코만치 족과 카이오와 족이 아파치족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들의 거주지역의 일부를 내어주어 같이 살게 되었다. 여타의 아파치 인디언부족들은 모두 자신들의 인디언보호구역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반하여 끝까지 백인에 대항하여 싸웠던 치리카우아 아파치족은 변변한 주거지역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항일 독립 투쟁에 헌신했던 선조를 가진 후손들은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던 사실과 조금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제로니모가 남긴 유산
제로니모의 본명은 아파치어로 고야틀라이(Goyathlay)이다. 이름의 뜻은 ‘하품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1829년에 태어나서 1909년 2월 17일 오클라호마의 실 요새 감옥에서 죽었다. 구술에 의한 그의 자서전(Geronimo's story of his life)이 1906년에 발행되었다.
모든 사물은 양면성을 가진다. 빛과 그림자는 항상 같이 다닌다. 아파치의 눈에는 전설적 영웅으로 보일 테지만 백인의 눈에는 악마로 보였을 것이다. 옳고 그름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 판단은 우리 모두 각자의 몫이다. 제로니모가 죽인 백인이 몇 명인지는 본인도 모른다고 하듯이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좀 과장해서 몇 천 명이나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으나 대략 천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911테러의 주모자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을 잡기 위한 작전에서 빈 라덴에게 제로니모라는 코드명을 붙였다. 잘 알다시피 빈 라덴은 911테러로 3000명에 가까운 무고한 생명을 뺏어갔다. 빈 라덴을 추종하는 무리들은 그를 영웅으로 칭송할지 모르나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희생자와 그 가족에게는 치가 떨리는 악마였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23년을 포로로 지냈다. 감옥 생활을 하는 동안에 그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1901년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대통령의 취임식에도 초청되었고 1904년 센트 루이스 세계박람회에 구경꺼리로 전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너무 초라했다. 그가 만든 활을 시장에 내다판 돈으로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오다가 마차에서 떨어져 추운 날씨에 얼어 죽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용감의 상징으로 흔히 이용된다. 다이빙 직전에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하여 ‘제로니모’라고 외치기도 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낙하산 부대들이 비행기에서 떨어지면서 ‘제로니모’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아파치라는 이름도 비슷한 상황에 쓰이는데 ‘아파치 헬리콥터’는 가공할 만한 전투력을 갖춘 미군의 주력 병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94년 10월 18일에는 미국 우편당국이 ‘서부의 전설들’시리즈 중 하나로 제로니모 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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