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해는 바다쪽으로 진다
보스톤코리아  2016-03-21, 11:42:37 
우리 가족은 시애틀에서 이사왔다. 시애틀은 태평양 연안에 있다. 그러니 저녁이면 해는 바닷쪽으로 진다. 해가 지는 쪽은 서쪽이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머리와 몸집이 큰 곳은 인천이다. 인천은 서쪽 바다를 마주보고 있다. 말하나 마나 인천에서도 해는 바다쪽으로 진다. 나는 해가 뜨는 것보다 해가 지는 장면이 더 익숙하다. 바다는 해가 질 무렵에면 장엄하다. 커다란 붉은 불덩이는 덜컹 바닷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오줌이 질금 비어져 나올지경에 이른다. 주황색 햇빛은 알갱이 되어 쵸코렛색깔 바닷물 위를 튕겨져 올라온다. 청량음료 탄산가스 올라오는 방울 처럼 말이다. 알갱이들은 눈을 찔러, 손바닥으로 가리든지 문질러야 한다. 

  보스톤은 대서양을 마주보고 있다. 아침이면 바닷쪽에서 해가 뜬다. 보스톤에 이사와서 얼마 있다가 바닷가에 간적이 있다. 마침 해가 지는 시간이었다. 몸은 당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그림자가 내몸 앞으로 길게 뻗친거다. 뒤로 돌아섰다. 아아, 내 몸 뒤로 해가 지고 있었다. 잠시 혼란에 빠졌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는 당연히 바닷물속으로 서서히 잠겨야 하는데, 뒷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던 거다.

  보스톤과 시애틀은 90번 고속도로로 연결되어있다. 90번 도로 서쪽끝에 야구팀 마리너스의 홈구장이 있다. 여기 맞은편 동쪽 끝엔 펜웨이 파크가 있다. 동쪽인지 서쪽인지 자주 헷갈렸다. I-90 east만 보다가, I-90 west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다. 여우도 죽을 적에 제가 태어난 굴을 향해 머리를 향한다는 말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보여주는 말인게다. 미국에서 사는 마종기 시인이다. ‘시를 한국에 발표하지 않으면 고국과 연결된 탯줄 같은 끈이 끊어져 한순간에 미아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단다. 미아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가 마종기시인 뿐이랴. 그의 시 한편이다.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바람부는 언덕에서, 어두운 물가에서
어깨를 비비며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마른 산골에서는 밤마다 늑대들 울어도
쓰러졌다가도 같이 일어나 먼지를 터는 것이
어디 우리나라의 갈대들뿐이랴
(마종기, 밤노래-4 중에서)

  또 봄이다. 봄이면 봄대로 고향생각이 유난스럽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날게다. 삼월은 물오름달이라 했던가. 올봄에 해는 꽃피는 고향쪽으로 진다. 물오름 달에 내가 봄을 타고 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한 4:4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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