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116 |
보스톤코리아 2016-02-08, 11:07:04 |
[옥진이 들어가 법흥왕에게 사랑을 받자, 곧 다시 처음과 같이 위화랑을 총애하게 되었다. 마침내 공은 이찬의 지위에 있게 되었다. 옥진이 법흥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자, 보도保道로 하여금 비구니가 되게 하고 위화랑을 신하로 삼았다. 그리고 지소태후가 국정을 맡자 화랑을 설치하게 되었는데, 공(위화랑)을 그 우두머리로 삼아 이름하여 풍월주風月主라 했다.] 옥진궁주는 오도가 위화랑에게서 낳은 딸이다. 이 일로 인하여 법흥이 잠시 위화랑을 멀리했었는데 위화랑의 딸 옥진이 법흥왕의 후궁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법흥왕이 위화랑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위화랑의 관위를 수상에 해당하는 이찬으로 승차시켰다.159) 그리고 법흥왕은 옥진궁주에게 빠지면서 정비인 보도왕후를 내치어 비구니를 만들었다. 지소태후는 법흥왕의 딸이다. 어머니는 보도왕후이다. 지소는 삼촌인 입종갈문왕과 결혼하였고 진흥왕을 낳았다. 신라의 화랑도라 하면, 삼국사기에 인용된 한 문장의 내용과 같이 모두가 현좌충신이요 양장용졸이어야 하며, 열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활약상처럼 전장에서 백전백승하거나 목숨을 버리고 장렬하게 전사를 해야만 되는것 같은데 화랑세기속의 화랑들은 활동은 예상을 빗나간다. 그들의 활약상보다는 인물을 위주로 한 혼인관계나 복잡하고 문어다리처럼 얽힌 남여간의 관계와 사통 등 심지어 남색의 정황도 여러군데 있다. 하지만 화랑세기花郞世紀는 문자 그대로 화랑도들의 특히 그들의 수장인 풍월주들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세보世譜나 계보系譜이다. 지소태후가 어린아들 김삼맥종(진흥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수렴청정을 하였다. 540년 진흥왕이 즉위를 할 때의 나이가 삼국사기에는 7살, 삼국유사에는 15살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 역사적인 정황을 종합해 보면 삼국사기의 7살이 더 유력하다. 또한 지소태후는 단순히 왕의 어머니로서 수렴청정을 한 것이 아니라, 법흥왕과 정비 보도왕후 사이에서 아들이 없는 관계로 차기 왕위계승의 권력투쟁에서 남편이 없이도 어린 아들에게 왕위를 잇게한 여걸이었다고 보여진다. 지소의 남편 입종은 진흥왕 즉위하기 전에 죽었다. 사서에는 기록이 없지만 후일 발견된 ‘울진봉평신라비’160) 와 ‘천전리 금석문’161) 을 비교해 보면 밝혀진다. 그리고 입종이 살아 있었다면 왕위가 입종에게 이어질 가능성이 더 있었다. 지소태후가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남긴 행적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끌고 후대에 까지 막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화랑도花郞徒 창설이다. 이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지소가 화랑을 설치하였다. 또 조선 초기에 편찬된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에서 그 설치 년도가 540년, 즉 진흥왕의 즉위년에 진흥왕이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조직적인 체계는 540년이라고 보더라도 이미 조직화된 화랑도의 성격을 띤 무리와 활동은 그 이전 부터 존재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7세의 어린 왕 진흥이 직접 설치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며, 결국 설치의 주체는 지소태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그 이전 부터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존재해 오던 전통적인 무리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승인하여 추진한 주체는 당시 섭정을 하면서 정권을 잡고 있던 지소태후이다. 창설 취지와 목적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좋은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 삼국유사에서는 진흥왕이 신선술神仙術을 매우 숭상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삼국사기를 따르면 화랑도는 고등교육기관이고 삼국유사를 보면 영원히 죽지 않는 신선이 되고자 열망하는 도교의 집단(교단)이 되는 셈이다. 실제로 여러가지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화랑도는 도교의 교단이면서 아울러 좋은 인재들을 길러 내었다. 당시 사회적 배경으로 신라인들의 삶을 지배했던 교리는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였다. 그렇다고 이 세 교리가 분리되어서 지배하였다기 보다는 서로가 어우러져서 신라인들의 삶에 녹아 있었다. 화랑도가 신선이 되기 위하여 지속적인 수양을 하는 가운데서 도교적인면을 부각해 보다면, 김대문의 ‘화랑세기’의 성적性的인 내용을 신라인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방중술房中術이다. 159) 이찬은 신라의 관위 중 2등으로 이척찬, 이간, 일척간이라고도 한다. 이찬은 처음에는 수상에 해당하는 최고의 관위였는데 후에 이찬 위에 ‘이벌찬’이 만들어졌다. 160) 국보 제252호, 1988년1월20일경 경북 울진군 죽변면 봉평리에서 발견했다. 161) 1970년 12월, 황수영,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울산지구 불적佛跡조사대’가 경남 울주군 천전리에서 발견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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