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0. 와시타강 대학살 (3) |
보스톤코리아 2016-02-01, 11:39:58 |
와시타강 대학살 (계속) 세리든 장군은 카스터의 전과에 대하여 크게 만족하였다. 그는 승전보고서에서 “작전 개시 전에 검은 주전자에게 군 요새로 들어오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제의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와시타 강 캠프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고집했다”라고 거짓 진술하였다. 카스터의 공격 직전에 미군의 공격 낌새를 알아차린 검은 주전자는 직접 콥 요새(Fort Cobb)를 찾아가서 부족을 다 이끌고 콥 요새로 들어올 테니 제발 부족을 공격하지 말아 줄 것을 간청하였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와시타 강의 전투는 전쟁행위이라기 보다는 학살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학살인가 전쟁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이 전투에 참가했던 엘리엇(Joel Elliott) 소령이 지휘하던 부대가 도망가는 샤이엔 전사를 추격하다가 오히려 샤이엔, 카이오와, 아라파호 연합 전사들에게 역습을 당해 위기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카스터는 엘리엇 소령을 구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회군해 버렸다. 결국 19명의 부대원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기병대내에서는 카스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제7기병대 H중대 중대장을 맡고 있던 엘리엇의 친구였던 벤틴(Frederick Benteen) 대위는 이 사건을 잊을 수가 없었다. 훗날 1876년 6월 25일에 있었던 리틀 빅혼 전투에서 카스터의 부대가 인디언 전사들에게 무참히 도륙 당하고 있을 때에도 벤틴은 그를 구조하러 가지 않았고 카스터는 최후를 맞이하였다. 검은 주전자가 죽은 후 작은 옷(Little Robe)이 명목상의 추장이 되어 살아남은 샤이엔 인디언들을 이끌고 12월말에 콥 요새로 들어왔다. 작은 옷은 세리든에게 카스터가 겨울식량으로 비축해둔 페미컨 등을 모두 불태워버려서 먹을 게 없으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노란 곰(Yellow Bear)도 아라파호족을 이끌고 콥 요새로 들어오기로 약속했고, 며칠 뒤에는 인디언 이름으로는 토사위(Tosawi)라고 불리는 은 칼(Silver Knife)도 코만치족을 데리고 들어왔다. 은 칼은 세리든 앞에서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자기를 소개했다. “토사위, 좋은 인디언(Tosawi, Good Indian)”라고. 여기에 대하여 세리든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본 좋은 인디언은 다 죽었소.(The only good Indians I ever saw were dead)”라고. 그 자리에 같이 있었던 노드스트롬(Charles Nordstrom) 중위가 기억하였다가 뒤에 옮겼는데 “죽은 인디언만이 좋은 인디언이다(The only good Indian is a dead Indian)”.라는 말로 알려져 그 말이 시대의 유행어가 됐다고 한다. 11. 리틀 빅혼 강 전투와 카스터 또 금광 발견이 문제였다 미국의 서부개척과 평원인디언과의 전쟁에는 금광 발견이라는 메뉴가 단골로 등장한다. 캘리포니아와 콜로라도에서 금광발견으로 인하여 백인과 인디언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듯이, 1874년 북부 평원인디언들의 안마당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금광은 엄청난 비극을 몰고 올 또 하나의 불씨를 제공하였다. 물론 1830년대 체로키의 땅을 뺏을 때에도 스모키산에서의 금 채굴이 화근이 되기도 하였다. 붉은 구름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거두어 인디언들에게 비교적 유리하게 맺어진 1868년의 라라미 조약에 의거 수우족, 샤이엔족, 그리고 아라파호족들은 파우더강 근방의 드넓은 평원을 마음껏 누비면서 사냥도 하고 큰 걱정 없이 지냈다. 레드 클라우드와 점무늬 꼬리(Spotted Tail)는 그들을 추종하는 부족을 이끌고 미국 측이 정해준 Red Cloud Agency라 불리는 주거지역에 들어와 살고 있었으며 앉아있는 소와 미친 말은 주거지역내에서 자유를 구속받는 것을 원치 않아 여전히 평원에서의 유목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조약 체결 당시 미국 측은 인디언 말로 파하 사파(Paha Sapa)라 불리는 인디언의 성산 블랙힐즈(Black Hills)를 별로 쓸모없는 땅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금이 발견되면서 노다지를 캐 큰돈을 벌고자 하는 백인들이 밀물처럼 산속으로 들어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인디언들은 라라미조약에 블랙힐즈는 명백히 인디언의 소유라고 표시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연방정부가 백인들의 무단 출입을 막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미국 측은 백인 진입을 막는 척만 할 뿐 사실상 방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는 사이 백인들에 의한 금광채굴은 날로 늘어나고 인근 정착촌들도 속속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미국정부는 백인들에 의한 무단점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이참에 블랙힐즈뿐만 아니라 인디언의 영토로 남겨 놓았던 땅 중 많은 부분을 헐값에 양도받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1875년 9월에 토지 양도를 협의하기 위한 대표단이 인디언 주거지역을 찾아 왔다. 블랙힐즈를 사들이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인디언들이 한 치도 양보할 뜻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표단은 양도 대신 광업권만을 사들이는 방안도 제시하였다. 물론 블랙힐즈에서 나오는 금의 가치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헐값을 제시하였다. 이 제안 역시 인디언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대표단은 아무런 소득 없이 워싱턴으로 돌아갔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블랙힐즈를 수중에 넣을 수가 없다는 점을 인식한 미국정부와 의회는 보다 강력한 일련의 조치들을 준비하고 나섰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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