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 (2) 터스키기 매독 실험 – 부끄러운 역사를 대면해야 하는 이유 |
보스톤코리아 2016-02-01, 11:36:23 |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2004년 1월 25일, Ernest Hendon이라는 이름의 한 흑인 남성이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전 미국을 경악시켰던 터스키기(Tuskegee) 생체 실험의 마지막 생존자였으며, 실험에 참여했던 600명의 “피해자” 중 생전에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받을 수 있었던 여덟 명 중 한 명이었다. 터스키기 매독 실험은 1932년부터 1972년까지 40년 동안 미국 공중 보건 서비스(USPHS: United States Public Health Service) 주도 하에, 앨러배마 주 터스키기에 거주하는 흑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이었다. 1930년대 초 터스키기 지역의 가난한 흑인들에게서 유독 매독 발병률이 높았으며, 또한 대부분 소작농이었던 이 흑인들이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USPHS는 이들을 치료하는 대신, 매독을 치료하지 않을 경우 자연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관찰하는 “매독 연구”에 착수했다. USPHS의 백인 의사들은 “정부가 당신들의 악혈(Bad Blood)을 무료로 치료하겠다”고 선전하고, 25세에서 60세 사이의 흑인 남성들 중 매독 발병 후 5년이 지났으며, 치료 이력이 없는 매독 환자 400여 명과, 매독에 감염되지 않은 200여 명을 대조군으로 유치했다. 흑인들은 이 실험에서 간호사로 고용되어 농촌 지역 흑인 피험자를 적극적으로 모집했다. 실험에 참가했던 흑인들은 정기적으로 검진센터를 방문하여 채혈을 하고 교통비와 음식, 치료약을 제공 받았다. 문맹이었던 흑인들은 실험의 취지와 연구 방법, 잠재적 위험 등에 대해 명시되어 있는 동의서(informed consent)에 서명한 적도 없었고, 자신들이 피험자라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가 제공하는 따뜻한 음식과 교통비, 무료 건강 검진에 감사했고, 아스피린이나 철분 보조재 같은 위약(placebo)을 매독 치료약이라며 제공하는 정부 당국의 말을 믿었을 뿐이다. 매독은 치료되지 않고 만성화 될 경우 각종 신경계 및 심혈관계에 만성적인 합병증을 초래하여 조기 사망을 일으킬 수도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이미 1943년에 페닌실린이 발명되어 효과적인 매독 치료가 가능했지만, 터스키기에서 이뤄진 매독의 자연 진행에 대한 연구는 1972년에 실험이 종료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게다가 USPHS 실험팀은 피험자들의 명단을 알라바마 보건소와 지역 의사들에게 보내 이들의 성병 치료를 막았고, 매독에 걸린 터스키기 청년들이 군에 입대했을 때에도 이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도록 군 당국의 협조를 얻어냈다. 이렇게 이들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여 알게 된 매독의 자연 경과에 대한 의학적 지식은 의학 저널에 보고되었다. 이 경악할 만한 사실이 공론화된 것은 피터 벅스턴이라는 내부 고발자에 의해서였다. 1966년 USPHS의 성병 조사 업무 담당자로 부임하면서 터스키기 연구의 실상을 알게 된 벅스턴은 이 프로그램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USPHS는 이를 조직적으로 묵살했고, 결국 그는 1972년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 해 벅스턴은 신문 기자인 친구에게 터스키기 연구에 대해 알렸고, 이를 통해 터스키기 생체실험을 공론화했다. 결국 이듬해 터스키기 연구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비난에 직면한 의학 실험자들은 피험자들이 실험에 참가했을 때는 이미 상당 부분 매독이 진행되어 있었고,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는 어차피 불가능했으며, 그들의 참여가 의료 연구에 기여했다는 이유를 들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어쨌거나 사건은 대중의 공분을 샀고 피해자들은 정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여 총 9백만 달러의 배상금을 얻어냈다. 터스키기 실험은 전 미국이 경악한 희대의 임상 실험으로 남게 되었다. 몇 년 후인 1979년, 임상 연구 시 인간 피험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칙인 벨몬트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벨몬트 보고서는 임상 연구가 사람에 대한 존중(Respect for person), 선행(Beneficence), 그리고 공정(Justice)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터스키기 실험의 경우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한 인종 차별적인 실험으로, 치료라는 의사 본연의 책무와 인간에 대한 존중을 저버린 비윤리적 사건이었다. 어쨌거나 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에 생존해 있는 터스키기 피험자들과 피험자의 가족을 초청하고 정부 차원의 공식적 사과를 했다. 그 자리에서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말은 의미 심장한 여운을 남긴다. “터스키기에서의 매독 실험은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국가가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린 사건이었습니다…우리가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과거를 수정할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난 달, 위안부 문제 ‘협상’에 임한 일본의 아베 총리는 “우리 아들이나 손자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계속 사죄를 할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한 국가에 의한 다른 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전쟁 범죄이며, 아동 인권 유린이며, 성범죄다. 일본에게 부끄러운 역사라면 지금 세대의 아들도, 손자도, 그 아들의 손자도 기억하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또 다른 부끄러운 과거를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하고 사죄하고 또 사죄하지 않는다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의 역사는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웃기는 ‘협상’은 그래서 역사에 대한 범죄 하나를 추가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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