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꿈을 찍는 사진관
보스톤코리아  2015-11-30, 11:20:38 
  올해는 예년과 사뭇 다르지 싶다. 아직 춥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그런가, 크리스마스가 아득하게 여겨진다. 추수감사절이 지나면 곧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릴게다. 칠면조고기는 드셨는지. 

  어린 내가 궁금한게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온다 했다. 우리집 굴뚝은 좁디 좁았다. 굴뚝으로 들어온다면 거대한 몸집으로 굴뚝을 타고 내려와야 한다. 안방 온돌밑을 기어야 하고, 아궁이를 거쳐야 한다. 그래야  부엌에 다다르고 앞마당으로 나오게 된다. 담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오면 될 것을 왜 굴뚝으로 들어 올까. 연탄불은 무지 뜨거울텐데, 연탄까스에 중독되지는 않을 겐가. 걱정은 또 있었다. 방으로 들어오려면, 닫힌 마루문을 열어야 한다. 어떻게 닫힌문을 열고 들어 올수 있을겐가. 연탄까스처럼 문틈으로 스며드는 건가. 게다가 선물 보따리가 좀 무거운가. 도무지 이해할 수없는 산타 할아버지여. 우리집에 들어오기 어려워서 그랬을까. 산타할아버지는 한번도 우리집을 찾지 않았다. 물론 선물도 없었다. 시인이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읊었다. 

너무 많이 걸었습니다.
희미한 고향집과 어머니,
그 개구쟁이들,
그들을 도로 돌려주소서.
조그만 카드 속에 정성을 담던
그 소년들도 돌려주소서.
한번 더 그 종소리 듣게 하시고
눈 내리는 아침을 걷게 하소서.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소서
(김시태,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성탄절 선물은 산타크로스가 주는게 아니라는 걸 알아 차렸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났다. 여전히 내 부모님으로부터는 어떤 선물도 없었다. 스스로 착한 어린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자책(?)하던 중이었다.  먹고 살기 바쁜데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 그 해 겨울 이었다. 잠결에 머릿맡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아버지 냄새가 났다. 눈을 뜨던 내 모습에서 아버지는 계면쩍은 얼굴을 지었다. 아버지는 뭔가를 내 머릿맡에 놓는 중이었다. 스케이트와 동화책 한 질이었다. 아버지께 묻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직접 사오셨을리는 없다. 심증은 가는데 물증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 선배분에게서 받으신 거다. ‘아이나 가져다 줘라’고 말씀 들으셨을 터. 겨울 내내 내게는 신나는 방학이었다. 동화책을 몽땅 읽었고, 스케이트장에 매일 출근했다. 그 해에만 특별히 내가 착한 소년이었고,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갔다. 

 ‘꿈을 찍는 사진관.’  그해 산타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통해 주셨던 강소천 선생 동화책 제목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서는데,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꿀 수 있을까. 아버지 꿈을 사진으로 찍어 낼수 있을까. 꿈을 찍던 사진관은 아직도 거기에 있을까. 올해에는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을까? 내 욕심이 과한 건가.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마태, 2:1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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