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오매, 단풍들것네
보스톤코리아  2015-10-05, 11:10:49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덩달아 마음도 허허롭다. 대신 젖었던 몸은 뽀송인다. 일교차가 큰데, 모두 몸조심에 감기 조심하시라. 

  추석이 지났다.  추석은 한가위라고도 한다. 중추절仲秋節이라고도 했다. 이 말을 요사이에도 쓰는지 그건 모르겠다. 송편을 빚고, 가족이 모이는 때이다. 송편은 드셨는지. 솔잎 위에 갓쪄낸 송편 김내가 코끝을 간지린다. 가을 한가위 맑은 가을 밤엔 달이 무지 크다. 한가위 밤은 둥근 달처럼 그윽할텐데, 단풍 기운은 조용하고 스산하다. 영랑이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아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김영랑, 오매 단풍들것네)

  이 무렵 가을엔 과꽃도 핀다.  한국 동요에 나온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 했지~요.’ 가을엔 국화일진대, 과꽃도 국화와 비슷하게 생긴듯 싶다. 국화가 삼사십대 중년의 누님이라면, 과꽃은 십대 중후반의 누나일게다. 장독대 주변엔 과꽃과 같이 맨드라미, 채송화도 같이 자랐다. 채송화란 이름도 예쁘다. 과꽃이 누나라면, 채송화는 어린 누이 순이처럼 읽힌다. 단발머리에 여전히 나이 어린 여자동생 말이다. 나는 여동생도 없으니 그저 상상 속의 여동생이다. 깡총치마에 눈망울이 초롱인다. 여동생 머리에선 엷은 가을 햇빛 단내가 날 것이다. 추석은 과꽃 같은 누이와 국화 같은 누나와 같이 모이는 시절이다. 어린 누이 순이는 동구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단풍에 가슴 설레는 시집간 누이를 기다릴 건가?

  지난 봄에 가까운 친구의 딸 결혼식 청첩을 받았다. 사위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내가 물었는데, 대답이 막연하다. ‘널 닮은 지독한 범생이다.’ ‘교회 오빠다.’ 사위가 내 아들이 아닌 바엔 날 닮았을리 없다. 내 청년시절과 비슷한 모양이다. 내가 웃은 건, 그의 딸이 교회에서 만난 남편을 ‘교회오빠’라 했기 때문이다. 교회 오빠는 있는데, 교회 누나는 없을리 없다. 교회 오빠를 만난 그 친구 딸아이도 추석에 다녀 갔을 거다. 

  간운보월看雲步月이란 말이 있다. 구름을 쳐다보고 달빛 아래를 걷는다는 해석이다. 객지에서 고향집을 그린다는 말이란다. 추석에도 고향에 갈 수없는 이들에게 달은 서늘해서 처량하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 우리 고가요 정읍사井邑詞 첫구절이다.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에게 달은 조바심일게다. 집으로 돌아가는 남편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고향 마당에는 과꽃뿐 아니라, 채송화도 피었을텐데. 미국에서도 과꽃을 볼 수있을까만, 단풍은 들기 시작했다. ‘오매 단풍 들것네’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마태 13:56)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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