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목욕탕집 남자들
보스톤코리아  2015-09-21, 11:42:43 
  고온다습高溫多濕이었다. 한동안 보스톤 날씨가 그랬다. 덥기도 했는데 습한건 못견디겠다. 눅진할 적엔 열탕熱湯이 피서법중에 하나다. 습한 날씨를 가을이 데려갔다. 

  연전에 회사일로 일본을 방문했을 적이다. 전통일본여관에 묵게 됐다. 온천이 딸린 꽤 유서깊은 여관이었다. 저명한 인사들이 여럿 묵고 갔다던가. 가와바다 야스나리도 소설을 집필하면서 묵었다고 했으니 말이다. 내게는 꽤 인상적이었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내 돈내고는 묵을 수 없다. 무지 비쌌으니 말이다. 한창 성수기에는 오성급 호텔숙박료보다 더 비싸면 비쌌지 싸지는 않았을 터. 

  여관 출입구 문지방을 넘어섰다. 일본 옷을 곱게 차려 입은 여주인이 마루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들어서는 우리 일행을 향해 머리숙여 깊히 절했다. 슬리퍼를 신는 일을 도와주었으며, 환영한다는 말을 입에 담는 듯 싶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인게다. 다음날 아침 미모의 여주인은 아침상을 받은 우리일행 식사를 보살폈다. 국을 퍼주고, 밥을 건네 주고, 이것 저것 챙긴거다. 그런데 여관에 묵으며 더 좋았던 건 실내외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었다. 더운 야외 온천에 몸을 담구는 일은 저으기 반갑기만 했던 거다. 게다가 방문했던 곳은 덥고 후덥한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몇년후 다시 일본 그 여관을 방문했다. 있어야 할 야외 온천은 폐쇄되어 있었다. 무슨일이 있었던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서늘하다. 지진으로 온천이 막혔단다. 하긴, 온천은 화산과 지진 다발지역에 있는 것 아니던가. 일본에 태풍이 몰아쳤단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희생자가 많은 모양이다. 위로를 보낸다. 

  온천은 더운곳에서 온천도 즐길만 하다만, 눈오고 추울 적에도 환상이다. 한 겨울엔 눈이 많이 오던 산골에서 살 적이다. 인디언들이 월동越冬하던 온천을 경험한 적이 있다. 눈보라는 쳤는데 물은 쩔쩔 끓었다. 몸을 뜨거운 물에 담궈 푹 삶아냈다. 물속에서 나와 맨몸뚱이에 찬 눈을 맞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었던 거다. 열탕은 계절과 무관하지 싶다. 

  목욕탕집 남자들. 오래전 텔레비젼 연속극 제목이다. 첫 장면이던가. 아들, 사위, 손자를 데리고 온탕溫湯안에 앉아 있던 목욕탕집 남자 모습이 그럴 듯해 보였다. 목욕탕에 아들과 같이 간 아버지는 보통 아이들을 온탕/열탕에 들어오게 꼬여낸다. ‘뜨거워?’ ‘아니, 안 뜨거워’ ‘정말이지?’ ‘그~럼.’ 먼저 온탕에 앉은 아빠가 어린 아들과 주고 받는 대화 내용일게다. 헌데, 나와 내 선친과는 반대였다. 내가 먼저 온탕에 앉아 얼굴이 벌게 질 때가 되면, 선친은 물으셨다. ‘뜨겁냐?’ ‘아뇨, 시원해요’ ‘너는 별스럽기도 하다. 그 뜨거운델 어떻게 들어 앉아 있냐?’ 선친은 내 체질을 당신이 주셨으면서도 황당해 하셨던 거다. 어구구구, 가벼운 탄성이 새어 나오면서 조심스럽게 발부터 담그셨다. 행여 당신몸에 화상이나 입지 않을까 걱정하시면서 말이다. 내겐 아마 뜨거움을 느끼는 인자가 덜 발달되어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씻어도
내장까지는
다 씻어낼 수 없잖아요?
(나태주, 목욕)

  그런데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갔을 적에, 아버지의 작은 등을 밀어드렸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아마 한 두번은 밀어드렸지 싶은데, 효자노릇 한번 했던가. 내 아이는 나를 따라 목욕탕에 갈 것인가. 아니면, 녀석이 제 아비를 모시고(?) 찜질방에라도 가려할까? 덕분에 녀석의 다 큰 몸을 다시 흘낏이라도 쳐다 볼 수 있을 것인가? 목욕탕안에 부자父子가 될 수있을까?

‘예수께서 이르시도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요한 13:10)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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