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마지막 황태자, 이구 보스톤 세탁소에서 일했다
보스톤코리아  2015-05-28, 22:19:45 
다나 로버트 교수(오른쪽) 지도하에 코리안 디아스포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희승 씨(왼쪽)
다나 로버트 교수(오른쪽) 지도하에 코리안 디아스포라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이희승 씨(왼쪽)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구,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부친 서두수,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란 커피 광고 모델이었던 소설가 김은국.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세명을 엮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보스톤에서 유학했던 이민 선구자들이란 점이다. 

마지막 황태자 이구
마지막 황태자 이구
 이구 씨는 고종의 손자이며 영친왕 이은의 아들이다. 1950년 미국에 입국해 1953년부터 57년까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며 보스톤에 거주했다. 그는 한국정부는 물론 동료 한국 유학생들로부터도 황태자로서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황태자란 신분이었지만 그는 유학시절 돈을 마련키 위해 세탁소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다. 그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심지어 미국에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로 삶을 살았다. 

1950년대에 미국 특히 보스톤에 유학 온 학생들의 삶도 이구의 삶처럼 순탄치 않았다. 이들은 미국사회, 특히 취업에서는 인종차별에 시달렸고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들이 피땀 어린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삶을 개척해 나갔지만 그들의 삶과 이민역사에 대한 조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밥 한끼가 고마웠던 유학생들은 1953년 BU의 마쉬 채플에 모여 보스톤 한인교회(Korean Church of Boston)를 만들고 바로 같은 날 보스톤 한인회(Korean Society of Boston)도 만들었다. 서남표 카이스트 전 총장의 아버지 서두수 씨는 보스톤 한인회의 1대 회장이다. 보스톤 한인교회는 현재 브루클라인으로 옮겨 보스톤 최대 교회의 하나이자 미국 본토에서 두번째로 역사가 오래된 교회로 자리하고 있다. 보스톤 한인회는 그 적통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한인회 활동을 하고 있다. 

무관심과 시간 속에 묻혀있던 1950년대 유학생의 역사가 보스톤 대학(BU)의 <보스톤코리안 디아스포라 프로젝트>로 발굴되고 있다. 보스톤 이민사는 한국의 근대화에 상당부분 기여한 점이 있었음에도 이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들만의 역사로 철저히 외면 받도록 만들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보스톤 한인들 조차도 이들을 상당 부분 잊거나 잊혀지도록 수수방관하는 처지에 놓였다. 

시간을 털어내고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기록의 조각들을 맞추어 역사 속 한인들의 유학생활을 재생해 내고 있는 프로젝트의 중심에 다나 로버트 BU 신학대학원 교수가 있다. 로버트 교수는 아시아 또는 한국과 혈연, 지연 관계가 전혀 없다. 더구나 이민사를 조명하는 곳이 역사학과가 아닌 신학대이다. 한인 이민사가 미국인 교수의 손에서 그것도 신학대에서부터 조명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로버트 교수는 몇 년 전 알게 된 전혜성(East Rock Institute회장, 고광림 박사 부인) 박사로부터 이 프로젝트의 영감을 받았다. 특히 “1950-60년대의 시민운동의 발단에 대해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반면 아시안 특히 한인들의 이민 역사는 연구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보스톤 한인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로버트 교수의 동기는 한국 기독교계 유학생들로 인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로버트 교수는 “30년간 많은 한인 제자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겼다”고 밝혔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이야기는 많이 회자 되지만 한인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조명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유학생들 특히 BU 관련 유학생들이 한국의 기독교 발전과 근대화 과정에서 공헌했던 점들을 개인의 이야기적 관점에서 접근해나가는 연구 방법을 택했다. 로버트 교수 자신이 마련한 자금으로 매 학기 3명의 박사과정 학생들을 선발해 50-60년대 한인 유학생들 중 한 명을 선정, 집중 자료조사를 하도록 했다. 

연구의 초점을 1950-60여년도에 보스톤에 온 유학생들로 집중한 이유는 이 시기를 선택한 것은 미국의 시민운동기와 상관관계는 물론 당시 유학생 이민사회에서 한국의 문화라는 개념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최초로 한인교회인 보스톤 한인교회를 설립하고, 한인회를 설립해 한국문화를 전파했다. 또한 이들로 인해 하버드 옌칭에 한국 책들이 구비되었고, 마침내는 상당수의 미국 교육기관 마다 이제 한국학 연구부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단한 변화다. 로버트 교수에 따르면 “이민법이 개정되기 전의 일로 흥미롭고 중요한 기간의 사건”이다. 

3년전인 지난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총 9명의 학생들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들이 다룬 인물로는 고광림 박사, 전혜성박사와 가족, 헬렌 킴과 에드 하이모프, 김성하, 이구, 리차드 은국 킴, 박대선, 정채식, 김대실 등 다양하다. 또한 한인 기관, 주요 사건들도 함께 다뤘다. 

올해 로버트 교수의 프로젝트에 참가해 대실 김 깁슨 감독의 이민사를 조명한 이희승 씨(BU 신학대학원 석사)는 “개인적으로 한국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신 분들을 찾고 싶었다. 특히, 사회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찾아내고 이들을 위해서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일했던 분들을 다루고 싶었다”며 프로젝트 전체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동기를 밝혔다. 

보스톤 온지 3년 된 이희승 씨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인들이 “한국보다 넓은 땅,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곳에 와서 오히려 좁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위안부, 사할린의 잊혀진 한인들, LA4월 폭동 속의 한인들에 대한 다큐멘타리를 만든 김대실 감독을 만나고 인터뷰 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꼈다고 그는 덧붙였다. 

자금과 학생들이 있는 한 이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는 로버트 교수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미국 시민운동 역사 등의 연구와 나란히 서게 되길 바란다. 단순히 씨앗을 뿌리는 기초 단계이지만 관심 있는 누군가가 이 연구를 전문적으로 맡아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램을 전했다. 

한때 노벨상 후보였던 김은국. 그러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던 그의 소설 <순교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적다. 단지 그가 출연했던 기차에서 내리던 그의 모습과 광고 카피만 기억될 뿐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로 기억되는 그. 

얼마 전 타계한 <백년간의 고독>의 저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의 책 <이야기 하기 위해 살다> 중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것이 당신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일과 당신이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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