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대전발 영시오십분
보스톤코리아  2015-05-11, 11:42:02 
  올 봄은 늦게 오더니 일찍 가려나 보다. 꽃 몇송이 보이는 듯 싶더니, 금새 날이 덥다. 뭐 그렇다고 불평하는 건 아니다. 노루 꼬리 마냥 짧다만, 그저 감사하는 게다. 모두 봄을 즐기시는지.

  일터로 오고 가려면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멀지 않은 거리이다. 하지만 이따금 휴게소에 들른다. 용무가 급할 적도 있으니 말이다. 주유소가 있으며, 맥도날드와 편의점이 있고, 피자와 도넛츠를 파는 가게도 있다. 이따금, 이곳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할라 치면 사뭇 낭만스럽다. 오고 가는 차량을 보고, 들고나는 통행객들을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라면 재미인게다. 

하지만 고속버스는 주차되어 있지 않다. 버스에서 내린 행락객들이 몰려들고 몰려나가는 모습은 더욱 없다.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와는 사뭇 풍경이 다른 게다. 참, 미국 휴게소엔 가락국수를 팔지 않는다. 대전블루스도 실내음악으로 틀어 주지 않는다. 

  대전발 영시오십분. 오래전 전前세대 선배들 귀에 익은 한국가요다. 내 어머니가 콧노래로 부르던 또 다른 가요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뿌리치며 울줄이야
아아-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대전 블루스)

  헌데, 난 대전블루스가 제목인줄 알지 못했다. 그저 대전발 영시오십분으로 알고 있었다. 

  중학교 지리시간일 게다. 대전은 교통요지라 배웠다. 경부선은 대전을 통과한다. 목포로 향하는 호남선도 대전을 거쳐야 한다. 내게 대전이라면, 한 십여분 사이에 훌훌 불어가며 먹던 가락국수가 먼저 온다. 

우동이라야 별것 있었던 건 아니다. 굵은 가락국수를 멸치국물에 담아냈고, 고추가루 톡톡, 김조각 몇 잎, 그리고 단무지를 몇 조각 얹어줬다. 주문하고,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절차는 없었다. 짧은 정차시간에 플랫홈에 서서, 말아주는 국수를 후후 불어가며 먹었던 거다. 몸 속에 빨아 드리는 식사행위였던 터.  요새 하는 말대로 ‘폭풍흡입’ 이라 해야 한다. 

  대전은 충청남도의 중심이다. 충청은 예향禮鄕이다. 송시열 선생의 예禮의 논리가 뚜렷하다. 사약을 받을 만큼,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그런 충청도가 한동안 화제의 중심에 서있었다. 조용한 동네에 바람이 일었던 거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전직 국회의원에 기업사장이 충청도분이라 했다. 그가 충청도 정치인 모임을 주도했다던가. 그에 관한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는 못내 마음이 편치 않다.  그가 보냈던 짝사랑이 못내 애석하다. 

  대전블루스는 흐느적 거린다. 짝사랑은 희미하다. 짝사랑은 봄날처럼 짧기도 한데, 급히 간다. 가락국수는 급하게 먹어야 하고, 봄날은 붙잡아도 뿌리치고 급하게 달아난다.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마가 6:31)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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