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 그리는 미국인 간호사 닐
보스톤코리아  2015-04-23, 22:56:41 
닐 렌드레빌 (나노열 씨)의 수묵화 '호떡 장수'
닐 렌드레빌 (나노열 씨)의 수묵화 '호떡 장수'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유다인 기자 =  1970년대 한국을 고즈넉히 담은 수묵화 ‘호떡 장수’는 호떡의 고소한 냄새가 그림을 뚫고 나올 것처럼 생생하고 향토적이다.

‘호떡 장수’ 외에도 하숙집 마당에서 등목을 하는 청년, 원두막에서 수박을 쪼개 먹는 동네 아이들 등 한국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수묵화의 화가는 놀랍게도 벽안의 미국인이다. 

뉴욕 앨머스트 병원에서 간호사(RN)로 근무하는 닐 렌드레빌(Neil Landreville), 나노열 씨는 “보물과도 같은 한국에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수묵화를 그린다. 

성의 첫 두 자(La)를 딴 ‘나’와 이름 닐(Neil)과 발음이 비슷한 노열, 1970년 한국에 결핵 의료 자원봉사로 처음 도착했을 때 한국어 교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이제는 나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당신도 전주 나 씨냐”고 농담을 건넬 정도다.

1970년부터 6년간 전라북도 김제에서 지낸 나 씨는 한국에 처음 도착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수원을 벗어나는 고속도로가 없어 기차를 타고 전주에 내렸다”며 “흙먼지 나는 울퉁불퉁한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하숙집에 도착했다”고 회상했다.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 ‘하숙집’인만큼 하숙집은 그에게 특별한 장소다. 나노열 씨는 추억이 가득 담긴 그 곳에서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주인 아저씨는 내가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방까지 가져다 주었지만 솔직히 이제와서 말하면 혼자 먹는 것이 굉장히 외로웠다”고 그는 밝혔다.

하숙집 주인은 외국인인 나 씨가 낯선 타지에서 힘들어할까봐 이모저모로 많은 신경을 써주었다. 창호지가 붙은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서양식 책상을 구해와 방이 꽉 차도록 넣어주기도 하며, 외롭지 않도록 금붕어 네 마리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이처럼 하숙집 식구들과의 특별한 추억이 고스란히 수묵화에 담겨 있다.

나 씨와 수묵화와의 인연은 액자 가게를 운영하던 동네 할아버지에게서 난초 그리는 것을 배우면서 시작됐다. 

“할아버지가 사군자(외국인과의 인터뷰에서 ‘사군자’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에 대해 알려주었다”는 나노열 씨는 “단순해 보이는 그림이 깊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전했다. 

“수묵화의 매력은 먹과 물만으로 공간의 음과 양, 그리고 사이의 회색 공간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라는 그는 신문에 종종 연습삼아 난을 그려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6년 후 미국에 돌아오고 나서다.  

지금은 ‘한국 엄마’라고 부르는 주인집 아주머니와 식구들이 그리울 때마다 붓을 꺼내들고 먹을 갈아 그때의 추억을 담은 수묵화를 그려냈다. 

청년의 시기를 온전히 한국에서 보낸 그는 “한국에서의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받아드릴 수 있었다”며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오는 5월 2일 콩코드에서 열리는 가정의 달 한국문화전시에서 나노열 씨의 작품 6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전시 작품 중에는 나 씨 스스로가 가장 만족해하는 작품인 ‘호떡 장수’와 가장 애착을 갖는 ‘하숙집’이 포함되어 있다.

한미예술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5월 2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진행되며 나노열 씨는 오는 2일 직접 보스톤을 방문해 리셉션에 참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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