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75 |
보스톤코리아 2015-04-06, 13:47:23 |
태평양 한가운데의 작은 섬나라 류구제도에 발생한 무술인 가라데는 1920,30년대에 근대 가라데의 창시자로 불리는 후나고시 기친에 의해 일본 본토로 전래되었고, 우리나라에는 1940, 50년대에 일본 유학생들에 의해 유입되어 현대적 유형의 도장으로 수련생들에게 전파되었다. 그리고 1950,60년대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서방세계로 흘러들어 갔다. 동양무술의 한 종류인 가라데가 미국인들의 유전자에 완전히 각인되면서 동양무술하면 ‘가라데’라는 용어로 일반명사화 시킨 계기는 ‘신의 손(God’s Hand)’이라고 격찬을 받았던 대사大師(Grand Master) 오오야마 마스타쓰(大山倍達, 1923 – 1994년) 가 펼친 신기의 미국 순회 시범 때문이다. ‘최배달(오오야마 마스타쓰를 한국식 한자발음으로 읽은 대산배달에서 따온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그를 마스 오야마 – Mas Oyama로 부른다)’, 그는 일본인이 아니라 순수한 한국인인 최영의崔永宜이다. 그는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본과 미국 등 서방세계에서 만큼의 유명세를 떨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의 신기와 업적은 역사적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양무술의 대사大師였다. 그리고 그의 유명세는 세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1970년대 이소룡李小龍(Bruce Lee) 이 등장하기까지 그는 가라데 대사大師(Grand Master)로서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최영의는 1923년 6월 4일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와룡리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기골이 장대한 선천적인 장사였으며 어릴 때부터 ‘차비’라는 무술과 아버지가 고용한 농군으로 부터 소림권법도 배웠다. 그는 1937년 일본으로 가서 야마나시山梨현에 있는 소년항공학교(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거기서 가라데(쇼도칸, 松濤館)를 배웠다. 그 후 동경으로 나와서 타쿠쇼쿠拓殖 대학교에 다니면서 근대 가라데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후나고시 기친船越義珍의 사설 도장에서 2년간 직접 사사하였다. 18세에 군대에 들어가 부토쿠카이武德會에서 수련하여 20세에 4단이 되었다. 그리고 조형주(미야기 쵸쥰宮城長順, 1888 – 1953, 의 한국인 제자) 밑에서 2년간 고쥬류剛柔流를 배웠다. 그는 1947년 교토에서 개최된 최초의 전일본 무도대회에서 당당히 우승하였다. 하지만 그는 뜻하는 바가 있어서(조형주의 권고로…, 또는 미군과의 불화로 쫓기는 몸이기에…, 여러 설이 있다) 속세를 등지고 1948년 치바千葉현 남부 지방에 있는 키요즈미산山에 들어가 수도를 하였다. 말 그대로 ‘입산수도’다. 18개월 동안 문명의 혜택과 편리함을 등지고 격리된 고행의 길을 걸으며 ‘도’를 닦았다. 폭포수 아래서 좌선을 하고, 야생동물과 대결을 하며 나무와 바위 등의 자연과 맞부딪히면서 그만의 무도세계를 확립하는 ‘구도’를 하였다. 그리고 ‘득도’한 후 하산하였다. 그는 상대방의 몸 앞에서 공격을 멈추어야(Absolutely No Body Contact) 하는 기존 가라데의 수련과 대결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즉 부상이나 심지어 절명케 할 수 있는 기예이기에 안전한 수련 방식으로만 해서는 실전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는 실전무도인 ‘극진極眞 가라데’를 창시하였다. 1951년 문명세계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가라데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 전역에 있던 무술의 고수들을 자신만의 독특한 무도의 기예로 연파하였다.(100여 차례의 승부에서 단 세 차례를 제외하고는 전승이었다) 그리고 극진가라데의 진수를 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하여 인간의 체력과 정신적인 한계에 도전하였다. 맨손으로 50여 마리의(47 ~ 52 마리 등으로 기록이 조금씩 다르다) 황소와 싸워 36마리(47 마리란 기록도 있다)의 뿔을 뽑고, 3마리는 즉사 시켰다. 그리고 바위 격파와 세워놓은 위스키병을 넘어뜨리지 않고 두동강 내는 등의 초인적인 힘과 스피드(Speed)의 위용을 자랑하며 최영의는 ‘조센징’이란 신분도 잊혀진채 일약 일본 열도를 휩쓰는 유명인이 되었다.112) 일본에서만 머무를 수 없었던 최영의, 그는 1952년 일본 유도대표 엔도오 코오키치와 함께 미국 순회 시범공연을 하였다. 위스키병을 공중에서 산산조각 내는가 하면, 당시의 쟁쟁한 프로 복서, 프로 레슬러 등세계 유수의 격투기와의 대결에서 연전연승하였고 주최측에서 TV에 방영하면서, 동양의 신비한 무술, 가라데가 최초로 매스미디어를 타면서 미국인들을 단숨에 매료시켰으며, 하루 아침에 최영의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사大師(Grand Master)가 되었다. 112) 쇼오지꾸松竹 영화사에서 그의 황소 대결 장면을 담은 20분 짜리 기록영화 ‘맹우와 싸우는 가라데’ 가 남아 있다. 이 필름이 일본 전역에 보급되어서 그는 일약 전국적全國的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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