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정계와 피노키오
보스톤코리아  2015-03-30, 11:04:34 
요즘 NBC 전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거짓말과 그의 메인앵커직 하차가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뻥질'이 비단 언론인뿐 아니라 많은 정치인들도 함께 앓고 있는 병이라는게 흥미롭다 (사실 언론계 9년(서당개 10년을 못채웠다) 경험상, 이건 인격적 문제보다는 직업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앨고어는 부통령이던 1997년 '타임'지 기자와 '에어포스 투(부통령 전용기)'에서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환담을 한다. 여기서 앨 고어는 1970년 에리히 시걸의 전설적인 소설 '러브스토리(영화 러브스토리의 원작)'의 주인공들이 사실 테네시에서 정치를 시작한 젊은 날의 자신과 자신의 아내를 본딴 것이라고 말한다. '부통령과 러브스토리', 워낙 관심을 끌만한 소재이기에 타임지 기자는 기사를 대서특필하고, 며칠 뒤 역시 타임지에서 후속기사가 이어진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고어는 거짓말쟁이"

후속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타임지에서 원작 작가인 시걸을 인터뷰한 결과, 고어의 아내는 여주인공의 롤 모델이 아니었고, 주인공도 고어뿐 아니라 고어와 절친한 대학 친구였던 토미리존스(맨인블랙)를 섞어서 롤모델로 했다는 것. 이 기사가 나오자 당황한 앨고어는 시걸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해명한다. 사실 고어는 시걸과 이전에 대화한 적이 없었고 '네쉬빌 테네시안(Nashville Tennesean)'이라는 지역지에 실린 시걸과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마치 시걸과 대화한 것처럼 기자에게 자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지는 자기 회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자랑스러운 정치인 고어를 보다 영웅처럼 꾸며 테네시 지역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시걸의 인터뷰 중 고어에게 유리한 부분만 짜맞춰 보도한 것. 그는 이 일화 일후 미국 정계에서 '피노키오'로 불리게 된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고어가 좀 억울할 만 하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니. 하지만 그의 피노키오 짓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고어의 여동생이 미국 해외원조 자원봉사단의 첫 대원이라고 언론에 자랑하고 다녔는데, 사실 기자들이 파헤쳐 보니, 창립멤버는 맞는데 사무실 붙박이었다. 또, 이 여동생이 담배를 많이 피우다 폐암에 걸려 죽자, 고어는 '담배와의 전쟁'을 선언하며 선거 캠페인마다 담배회사를 비난하고 다녔는데, 정작 그의 고향땅 농장은 동생이 죽은 뒤에도 한참 동안을 담뱃잎을 재배하고 있었다. 고어는 또 베트남에 종군기자로 파견됐을 당시 찍은 M-16을 들고 취재하는 사진을 자랑하며 숱한 위기를 헤쳐 살아남았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이 역시 주변 동료들의 증언 결과 과장된 '반 뻥'이었다. 

그런데, 이런 숱한 뻥과 과장들이 과연 의도적이였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오히려 직업상 만난 많은 정치인들과 동료 언론인들의 영웅담을 떠올려 보자면, 그리고 숱하게 친구들하게 떠벌였던 내자랑도 돌이켜보자면, 부끄러워지면서도 브라이언 윌리엄스와 고어를 감싸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치열한 경쟁과 명예욕이 교차하는 언정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피노키오가 되고 있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해결책을 찾아야하는 것은 사실 공익과도 직결된다. 우리 모두 우선 현실과 판타지를 제대로 구분해야, 사회를 제대로 이끌 수 있을테니.

김형주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플래그십 프로그램, 
공공정책학(Master of Public Policy) 과정에 수학중.
한국에서 방송기자로 9년.
잠시 유엔 한국 대사관에서 임시 공보관으로 근무.
언론과 정치, 경제 영역의 접점에서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찾고자 연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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