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후크 총격사건과 미국의 일베
보스톤코리아  2015-03-16, 12:04:45 
한국전쟁, 베트남전, 그리고 냉전 중의 그 수많던 몰인간성을 목격한 우리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군중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의 유가족들을 지금까지도 터무니없는 반공 판타지에 휩싸여 공격하고 있는 일베도 그런 예중에 하나일 것이다.

2012년 12월 벌어진 미국의 샌디후크 총격사건도 마찬가지였다. 20명의 초등생과 6명의 교사가 공격용 소총을 든 '왕따' 청소년에 의해 무참히 학살된 이 사건은 미국 전역을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지만, 곧 정치적 음모이론의 표적이 된다. 내용인즉, 총기보유의 자유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미국의 보수 우익 지지자들과 이들을 고객으로 하는 우익 지방지 기자 수백명이, 총기사용을 금지하려는 좌익분자들의 음모에 의해 사건자체가 조작된 정황이 있다며 슬픔에 잠긴 마을 (뉴타운)에 들이닥친 것. 이들은 어린 아들, 딸을 잃은 유가족들이 좌익분자(한국의 좌익과 다르다. 미국의 민주당)들에 의해 조종돼, 없던 아들딸 얘기를 떠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며, 유가족들과 마을사람들을 줄기차게 괴롭힌다.

그런데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한 것은 뉴타운의 'The Bee'라는 지방지였다. 평소 마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나 자질구레한 상점 개업, 폐점 정보들을 다루던 이 신문은 샌디후크 총격 당시 가장 먼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사건을 다뤘는데, 특히 마을 의용소방대원을 겸직하던 섀논 힉스라는 여성 리포터가 소방대원 신분으로 참극이 일어난 현장 한 가운데서 찍어놓은 사진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마음 따뜻한 힉스와 The Bee의 편집장은 유가족과 마을주민들에게 상처주기가 싫어, 이 특종거리를 그동안 서랍속에 꼭꼭 숨겨두고 있었던 것.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유가족들을 괴롭히는 망나니들을 마을에서 내쫓기 위해 힉스의 사진들을 보도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진을 왜 보도했느냐는 이웃들의 핀잔, 그리고 차라리 속시원하다는 유가족들의 응원 속에, 힉스의 사진들은 단숨에 퓰리처상 후보까지 오른다.
결국 여기에서 하고 싶은 말은, 사람들은 어차피 "보는 것을 믿는다"라는 점이다. 비단 사진뿐이겠는가, 사건을 일선에서 목격한 기자들의 투명하고 공정한 기술 또한, 정치적 신기루에 사로잡힌 군중들을 정신차리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까지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어있다면, 또는 보통 일관성없이 벌어지는 진실을 지리하고 난삽하게 서술하는 것이 상업적인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실을 설명하기를 기피한다면, 일베나 샌디후크에서 보아온 몰인간성의 저주를 풀 방법은 사실상 없는듯 하다.


김형주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플래그십 프로그램, 
공공정책학(Master of Public Policy) 과정에 수학중.
한국에서 방송기자로 9년.
잠시 유엔 한국 대사관에서 임시 공보관으로 근무.
언론과 정치, 경제 영역의 접점에서 진정한 리더십의 의미를 찾고자 연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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