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오호희재嗚呼喜哉 라 |
보스톤코리아 2015-02-20, 15:39:22 |
올해 설날은 늦다. 이제야 정월 초하루가 되었으니 말이다. 양력으로는 봄이 코앞인데, 산 처럼 쌓인 눈은 여전히 위풍당당하다. 봄기운은 눌리고, 움트려는 새싹은 옴짝달싹할 수없을 터. 설날 아침, 떡국은 드셨는지. 눈사태에 시달리는 당신. 늦어도 입춘대길 몇 년전이다. 아이가 한국학교에서 붓글씨를 배웠다. 학기가 끝날 때 작품을 제작했다. 완성된 작품을 나에게 보여줬고, 거실에 걸었다. ‘사는 것이 행복이다’ 라고 훈민정음체로 쓴 반듯한 글씨였다. 뜻이 깊어 철학 냄새가 가득했다. 다행히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뭐 이런 계몽성 표어체는 아니었다. 바로 그 즈음, 아이에게 소설가 황석영이 했던 말을 우연히 말해줬었다. ‘살아 있음은 생생한 기쁨이다.’ 아이가 이해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그저 주절였던 거다. 몽테뉴는 살기 위해서 산다 했던가. 살아가는 목적과 삶 자체의 구별이 모호하다. 헌데, 분명한 건 인생을 살기 위해 산다하면, 너무 건조하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이란 말 처럼 말이다. 문장이 스산하고 썰렁한 게다. 인생은 살기 위해 사는 것과는 달리 봐야지 싶다. 그게 인생에 대한 예의이고, 창조주에 대한 겸손일 테니 말이다. 숨쉬고 살아가는 자체가 기쁨이라 해야 한다. 삶을 치열하지만 즐겁게 살아내야 함이 마땅하다고 내가 부득부득 우긴다. 시詩 ‘인생’은 별 다른 해설이 없어도 그냥 읽힌다. 마치 우리네 인생처럼 말이다. 인생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오호희재嗚呼喜哉 . 아아, 즐거운 인생. 어차피 살아야 할/인생이라면 눈물 같은 소주를 마시며/잠시 슬픔과 벗할지언정 긴 한숨은/토하지 않기로 하자 아롱아롱 꽃잎 지고서도/참 의연한 모습의 저 나무들의 잎새들처럼 /푸른빛 마음으로 살기로 하자 세월은 /훠이훠이 잘도 흘러 저 잎새들도/머잖아 낙엽인 것을 (정연복, 인생) 봄이다. 우수雨水인데, 설날과 날이 같다. 우수라면 대동강 물은 이미 풀렸을 게다. 찰스강은 풀릴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올해는 유난스레 겨울이 길다. 하지만, 겨우내 얼었던 아이의 성장판은 언 강물 녹듯 녹아 내릴터. 키가 크고 몸집이 불어가며, 살아가는 게 생생한 기쁨이고, 사랑이란 걸 배워갔으면 한다. 푸른빛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인 게다. 어련할 테지만, 그래도 아비의 노파심이다. 설날 아침, 아비가 아들에게 주는 덕담인데, 잔소리와 구별은 모호하다. 오호희재嗚呼喜哉라. 즐거운 인생이여. 풀린 푸른 강을 기다리는 당신. 복 많이 받으시라. ‘그래서 사람은 인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인의 성경, 전도서 8:1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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