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 인종은 어떻게 개량되는가?!
보스톤코리아  2015-02-20, 15:38:21 
“서울 중앙지법은 12일, 강제로 낙태 및 단종 (정관수술)을 당한 한센인들 20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정당한 법률상의 근거 없이 원고들이 마땅히 누려야할 신체를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 행복 추구권,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했다’며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시간 2015년 2월 12일 타전된 뉴스다. 이 뉴스를 접하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치 독일이나 미국의 우생학, 혹은 과학의 탈을 쓴 인종주의에 대해 비판을 했었지만, 우리에게도 그런 ‘전과’가 있는 줄 솔직히 몰랐었다.  (참고로 이번 판결은 지난해에 이미 같은 사건의 피해자 19명이 소송결과 국가의 배상 판결을 입은 이후 두 번째 승소판결이었다.)

한센인들에 대한 강제 정관 수술은 일제 강점기였던 1937년 시작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1948년부터 1990년까지 소록도와 칠곡 애생원 등 국내 한센인 정착촌에 거주하는 한센인 부부 및 동거인들을 대상으로 강제 정관 수술 혹은  강제 낙태 시술이 시행되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국민이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한 집단의 국민들에게는 국가에 의해 자행된 길고 오랜 폭력이 있었던 셈이다.

어떤 정부도 태어나야 할 국민과 그렇지 않은 국민을 결정하거나 통제할 권리를 위임받은 적이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비극적 폭력이 여러 세월에 걸쳐 존재했다. 일반사람들의 한센인에 대한 낙인과 혐오, 혹은 차별적 시선이 사실상 묵인했던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우생학 프로그램도 그랬었다. “인류를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앞장서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신체에 대한 자율권을 훼손하는 폭력을 저질렀다. 1907년에서 1963년까지의 기간동안 미국 각주에서는 “신 박약이라는 이유로, 아이큐가 낮다는 이유로, 사회에 적합치 않다는 이유로(!),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약 64,000명이 비자발적인 불임화 시술 (Sterilization)을 받게 되는데, 이를 뒷받침한 법이 각종 우생학법이었다.  1920년대 팽배했던 반이민정서와 함께 우생학은“미국사회에 적합치 않은” 이민자들의 “번식”을 원천차단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우생학 캠페인 포스터에는 “Some people are born to be a burden on the rest 어떤 이들은 날 때부터 다른 이들에게 짐이 된다”와 같은 문구들이 등장했다.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우생학 (Eugenics)은 인류의 유전적 특징을 개선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했다—어떻게? 선택 교배 (Selective Breeding)와 단종 (Sterilization)을 통해서! 

전체 인류에서 우월한 사람의 비중을 늘릴 수 있는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우생학을 처음 제안한 것은 19세기 후반, 다윈의 사촌이었던 프랜시스 갈튼 (Francis Galton)이다. 유전자 결정론자이자 영국 상류층 출신이었던 갈튼이 개인의 사회적 지위는 유전적 특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는 선택 번식을 통한 인류의 자체진화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우생학의 아이디어가 미국에 건너왔던 20세기 초반 미국의 키워드는 혁신주의 (progressivism)였다. 19세기 후반의 정부가 거대 산업자본들의 무한질주에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취함으로써 기업의 독점 문제를 방관했던 데에 대한 반응으로서, 많은 혁신주의자들은 정부가 직접,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경제 문제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즉, 20세기 혁신주의자들의 초점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개혁이었다.  

그러므로 개인의 유전적 특징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게 된다는 식의 생물학적인 결정론은 논리적으로 혁신주의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놀랍게도 우생학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폭넓게 혁신주의자들의 지지를 획득했다. 가령 흑인의 지위향상을 주장하던 흑인 지도자 W.E.B DuBois 는 각 인종별로 가장 뛰어난 10% 가 모여서 인류 전체의 질적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는 “Talented Tenth”를 이야기했고, 산아제한 운동의 마가렛 생어는 피임약을 우생학 프로그램의 도구로 생각했다. 여러 ‘공익’ 재단들이 우생학 프로그램에 재원을 보탰고 대학들도 우생학 과목을 개설하곤 할 정도였다.

우생학은 아마도 육종학의 도메인을 인류로 확장한 버전에 해당할 게다. 농작물이나 가축 중에서 특정한 품종을 얻기 위해서  재배자 혹은 사육자가 원하는 형질을 가진 개체만을 골라서 번식시키는 육종학은, 아마 멘델이 유전법칙 이론을 제안하기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지식이다.

그러나 육종학의 자매버전인 우생학은 끔찍할 수 밖에 없다. 우월한 혹은 바람직한 유전적 형질을 가진 사람들끼리 “교배”시키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단종 (즉, 불임)”시킬 때, 어떤 종류의 사람은 마땅히 태어나야 하고 어떤 종류의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문제에는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의 문제가 개입할 수 밖에 없다. (재배자 혹은 사육자같은) 지배적 존재가 바라는 (desirous)것과 바람직한 (desirable) 것을 혼동하는 오류도 스며들어 있다.

혁신주의의 시대에 우생학이 사회전반의 지지를 획득했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라고 있는 사회와 바람직한 사회를 혼동했다. 더 나아가 “날 때부터 다른 이들에게 부담이 될 존재”를 임의로 결정할만큼 그렇게 오만했던 것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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