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69 |
보스톤코리아 2015-02-20, 15:35:56 |
1954년 9월, 속초에서 제1군단 창설4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106) 이 기념식에는 이승만대통령이 참석하는 만큼 성대하고 의미있게 치루어졌다. 그리고 당시 제1군단 참모장이었던 최홍희는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자신이 훈련시킨 태권도(당시는 당수도) 시범단의 시범을 하였다. 이 기회는 최홍희에게는 또 한번 그의 인생에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약 30분 정도의 시범을, 무술을 매우 좋아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줄곧 서서 관람하였으며, 남태희가 마지막으로 13장의 기와장을 일격에 박살내는 것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박수를 쳤다고 한다.(태권도 현대사, 강원식, 이경명 공저) 최홍희가 창설한 오도관의 1,2기생 50여명의 당수도 시범단은 대통령 앞에서 시범을 하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가졌고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관람자들은 무술의 위력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자리를 뜨면서 시범을 주관한 최홍희에게 “저게 예로부터 전해오던 우리의 태껸이야 태껸!…”이란 말과 함께 이 무술을 전군에 보급시켜 전투력을 강화하라고 지시하였다. 이 노老대통령의 한마디는 최홍희의 뇌리에 큰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이승만의 ‘격의格義’107) 속으로 파고 들어가려면 가라데나 당수도 또는 공수도로는 되질 않고 ‘태껸’이나 이와 비슷한 소리라야만 된다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의식하였다. 왜냐하면, 당수도라는 이름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의식세계로 파고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시의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날조하거나 부인하면서 이대통령의 의식세계, 즉 그가 정형화하고 있는 인식체계의 격의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아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선두주자가 최홍희였다. 그는 일본 유학 중 가라데를 배운것이 정설로 되어 있지만 그의 무술경력은 자신에 의해서 날조된다.(김용옥의 ‘태권도 구성원리’에 의하면 그는12세에 위대한 독립투사가 되었고 한일동에게서 서도와 태껸을 배운 도사가 되었다. 그렇게 함으로서 일본으로 유학가기 전에 그는 이미 태껸의 정통성을 승계한 무사로서 현해탄을 건너게 된다.) 최홍희의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더라도 이 무술을 이승만에게 인식시켜야만 했다. 야심 많은 그는 그가 일본에서 배운 가라데의 확산을 통하여 자신를 군내부에서 확고한 정치적 입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하였다.(최홍희는 군인들에게 태권도를 수련시키기 위하여 오도관吾道館을 창설하였다) 그래서 이승만과의 뜻깊은 만남이 있은 후 고심 끝에 1955년4월11일 ‘태권跆拳’이라는 두 글자를 창안하였다. 그가 배운 가라데가, 고금의 모든 무술이 그러하듯, 손과 발의 동작과 기술로서 상대방을 제압하는데 기인하여 그 뜻을 내포하고 이승만의 ‘이해의 틀’에 박혀있는 ‘태껸’이라는 음音의 유사성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태껸’ 또는 ‘택견’의 발음과 비슷한 무엇으로 즉, 당수도나 공수도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온 무술을 대체하고 제압해야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당수도나 공수도는 모두 손기술을 뜻하는 무술이며, 사실 당시에는 손기술 위주의 무술이었다. 태권도는 1960대 부터 비약적으로 발기술 위주의 무술로 진화하였다. 그래서 현재는 경기태권도(또는 올림픽 태권도)는 거의 손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며 설령 사용하다손 할지라도 득점의 기회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106) 김용옥의 ‘태권도 구성원리’(71쪽)에는 ‘1952년, 휴전협정이 조인되기전해, 한국전쟁의 전화속에 국토가 휘말려 있던 어느날…’ 이라고 기술되있다. 강원식과 이경명의 공저 ‘태권도 현대서’에는 1954년 5월로 기술되어 있다. 제1군단은 6.25발발 3일 후 수도권을 방어하기 위하여 창설되었고, 다른 문헌들을 종합해보면 군단 창설4주년 기념행사시였기에 1954년이 정확하다. 또한 제1군사령부에서 시범을 하였다는 문헌들도 있는데, 이것도 잘못 기술된 것이다. 제1군야전군사령부는 1953년12월15일에 인제군(관대리)에서 창설하여 이듬해 7월 원주로 이전하여 현재까지 주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제1군단은 제1군야전사령부 창설과 함께 제1군사령부 예하군단으로 있다가 1973년 7월1일 제3야전군에 제5군단과 제6군단과 함께 재배속되었다. 대구에서 창설된 제3야전군사령부는 주월한국군사령부를 제3야전군으로 재편성한 것이며 본부는 용인시에 있으며, 현재 제1군단은 경기도 고양에 있다. 107) 격의格義란 원래 불교용어인데, 김용옥은 이것을 ‘문명사의 이해의 틀’이라는 개념으로 전환시켰다.(그의 저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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