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과 신라, 가야의 친연성 (2) |
보스톤코리아 2014-12-01, 10:27:08 |
서기 375년에 전유럽을 삽시간에 석권한 훈족의 원류가 한반도의 신라와 가야라는 주장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많은 사람들은 교통수단을 말에만 의존하였던 4~5 세기 때 한반도에서 7천~8천 km나 떨어진 머나먼 곳을 어떻게 공격하겠느냐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훈족이 한민족의 일파라는 주장은 한민족이 유럽을 공격했다는 것이 아니고 훈족과 한민족의 일부가 뿌리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타당한 말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250여년 전, 조선의 영정조 시기에 유명한 로마 제국 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 1737~1794)은 동쪽으로부터 갑자기 나타난 훈족의 원류로 아무르강(흑룡강)과 한반도 사이에 산재한 흉노족 일파를 거론하였다.
에드워드 기번은 이들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훈족이 되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다고 기록하였다.(이종호 박사) 일찍이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께서 북방 기마 민족과 한민족과의 관계를 조선 상고사를 통해 기고한 바가 있었다. ‘여진, 선비, 몽골, 흉노(훈) 등은 본래 우리 한민족의 동족이며 흉노는 조선의 속민이었다’고 하면서 ‘기마민족 국가인 고조선에서 조선족이 분화하여 조선, 선비, 여진, 몽골, 흉노 등이 되는데 특히 흉노족이 흩어져 돌궐, 헝가리, 터키, 핀란드 등의 종족이 되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또한 ‘북흉노가 흑해 부근으로 들어가서 동고트를 압박하고 그로 인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촉발시켰다’고 기록하였는데, 이로 인해 단채 신채호 선생은 ‘한민족이 오랑캐냐’는 반박을 받아야만 했고 그 이후 우리는 흉노나 훈족에 대한 연구나 기록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1983 프랑스의 모리스 부비에 아잠(Maurice Bouvier~Ajam)은 “아틸라, 신의 정벌”에서 더욱 놀라운 자료를 발표하였다. 그는 한반도에서 유럽에 이르는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흉노 지역, 파미르 고원, 카스피해, 볼가강, 흑해를 거쳐 다뉴브 강에 도달하는 코스를 제시하며 이동경로 이름도 코훈 로드(Korea-Hun Road)라고까지 명명하였다. 그는 한국인들이 유럽으로 서천하게 된 이유는 인구가 증가하던 차에 중국의 압력을 받아 만주를 거쳐 흉노 지역을 넘어 유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특히 인종적으로 훈족과 한민족은 전혀 다름이 없고, 전투에서 용감하고 끈질기며 신속하다고 기록하였다. 아잠은 두 민족이 사용한 도구들이 유사하다고 하며 특히 1924년 경주시 대릉원 노동동에 있는 금령총(金鈴塚)에서 발견된 기마 인물상(국보 91호)의 말 등에 실린 동복(cauldron)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하였다. 동복은 스키타이, 흉노와 함께 BC8~7세기에 나타나서 AD5~6세기 흉노, 훈의 소멸과 함께 사라졌는데 흉노, 훈이 지나간 이동경로에서 많이 발견되고 있다.(이종호 박사) 한반도에서는 평양이나 김해에서 모두 5개의 동복이 발견되었다. 또 경주 금령총에서 발굴된 기마 인물상처럼 토기 형태로도 발견되는데 경주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서수형 토기나 가야, 신라에서 오리나 기러기 토기잔 등에 동복 모양으로 꾸민 토용도 이런 범주에 든다고 생각된다.
알타이 민족은 옛부터 나무를 숭상해 왔다. 오래되고 큰 나무는 신격화해서 정성 들여 모셔왔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금관에 사슴뿔 올림 장식과 함께 나무 올림 장식을 올린 것은 나무 숭배 사상의 표현인 것이다. 훈족, 흉노족의 상징물인 동복에 나무 장식 문양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훈족이 한민족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람들이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훈족이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유럽에 도달했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첫째로 한반도와 유럽은 너무나도 먼 거리다. 단시일에 수많은 병사들이 이동하기에는 지금도 어렵지만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는 당시에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을 하거나,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 치세 때로 중국으로부터의 압박은 없었지만 선비족인 모용씨의 후연과 역시 선비족 탁발씨의 북위와 물고 물리는 전쟁중에 있었고, 백제는 광개토 대왕에게 항복한 바 있어 국운이 쇠약할 때였다. 신라는 미구에 가야, 왜 연합군에게 침공을 당할 즈음으로 한반도 네 나라에서 군사를 빼서 딴 곳에서 전쟁을 벌일 여유가 없었다. 한민족과 훈족은 별개의 그룹이다. 다만 두 민족이 뿌리가 같다는 가능성이 아주 많은 것은 사실이다.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이광호 교수는 두 민족간에 유전 인자의 유사성을 발표하고 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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