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52 |
보스톤코리아 2014-11-05, 11:15:53 |
2014-10-17
무예도보통지의 마상육기馬上六技(2) 둘째로 마상쌍검馬上雙劍에 대해서 살펴보면, 말위에서 사용하는 쌍검은 보쌍검, 즉 보병들이 사용하는 검과 같은 요도腰刀이다. 쌍검으로 ‘검’의 용어를 썼지만 마상쌍검에 사용한 칼은 ‘도’이다. ‘검劍’은 양날의 칼을 말하고 ‘도刀’는 외날의 칼을 일컬음이다. 또한 ‘춘추번로春秋繁露’에 이르기를 “검에는 좌청룡상이 있고 도에는 우백호상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검은 한 쌍의 칼을 말할때 쓰이고, 도는 단도單刀를 칭할 때 자주 쓰인다. ‘열사전烈士傳’에 보면 “검공劍工 간장干將이 진晉나라 임금을 위하여 검을 만들었는데 검에는 자웅이 있다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고서들의 문헌을 종합해 보면 ‘검’은 양날의 자웅의 칼이고, ‘도’는 외날의 칼을 한 자루로 사용할 때 주로 쓰이는 용어이다. 마상쌍검에 쓰인 요도는 길이가 2자5치(약75cm)이고 칼자루 길이는 약 17cm이며 무게는 300g 정도이다. 모원의茅元儀의 ‘무비지’에는 “요도가 단도와 수도手刀와 대략 같으며 말 위에서 실용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수도手刀는 칼날이 넓으며 칼끝의 등이 휘었고, 칼자루 끝에 작은 고리가 있어서 세속에서는 이른바 박도朴刀라고 부르는 것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쌍검은 단도短刀를 택하여 사용하였고, 마상쌍칼은 요도보다 짧은 것을 사용하였다. 중국에서는 가끔씩 마상에서도 7척이나 되는 긴 쌍칼을 휘두르며 적을 쓰러뜨린 기록들이 있긴 하지만, 마상에서는 짧은 칼이 항구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용이하다. 무예도보통지 ‘쌍검편’에는 ‘무편武編’을 인용하여 검을 쓰는 자세와 방법 및 검법劍法에 대하여 13항목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해 놓았다. 셋째로 마상월도馬上月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짚어본다. 마상월도 역시 보병들의 월도와 같다. 칼자루의 길이가 6자4치(약 195cm), 칼날의 길이가 약 85cm, 무게가 2kg가 넘는 초대형 칼이다. ‘삼재도회三才圖會’ 따르면 “칼을 쓰느 데는 왜인들만큼 묘리를 터득한 사람들이 없다. 그런데 칼을 쓰는 법에는 몇 가지 기예가 있다. 수가 높고 파하는 법을 알면 방어에는 무난하다. 오직 관운장(관우)의 언월도는 칼의 위력이 원래 대단히 크며, 그 36도법刀法은 ‘병장기’에 기록되어 있어서 모르는 이가 없다. 칼 종류로는 이 언월도를 제일로 삼는다. 특히 마상월도는 길어야 한다. 모름지기 앞으로는 말머리를 넘어야 하고, 뒤로는 말꼬리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도검록刀劍錄’에는 “관우는 유비를 소중히 여겨 신명을 아끼지 않았다. 스스로 도산都山(즉 무도산인데 면죽현에 있다)의 철을 채취하여 두개의 칼을 만들어 새기기를 만인萬人과 공패公敗라 했다. 공은 애석하게도 물속에 던져버리고 말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칼이 세속에서 말하는 ‘청룡언월도’이다. 청룡이라 함은 춘추번로검에 있는 좌청룡상을 말함이며 언월의 법法은 용의 입이 칼날을 물고 있다. 칼날 가운데 용이 구슬을 물고 있는 것을 새겼는데 불꽃과 같은 기氣가 있어서 아주 명명하였다. 마상월도에서 사용하는 두가지의 칼을 언월偃月(누운 달이라는 뜻)과 미첨眉尖(눈썹의 끝모양)라고 하는데, 모두 칼날이 넓고 자루는 길고 그 사용법은 같다. ‘무경武經’에서는 언월도를 칼의 제일로 삼는다. 또한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미첨도를 사랑하여 항상 그의 좌우에 배열하였다고 한다. 모원의는 언월도는 실전에서 사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하였으며, 상순尙順은 미첨도를 사용하기가 힘들다고 했는데 무예도보통지에서는 혹시 옛날과 지금의 사용방법이 매우 달랐지 않았을까 하고 의구심을 나타낸다. 임진왜란 때, 계사년(1593년) 정월에 이여송이 우리의 관군과 의병들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또한 정유재란 때는 울산의 도산전투에서 명나라 경리經理 양호楊鎬85) 가 활약하여 승리하였다. 이 당시 군관민 모든 사람들은 관운장의 영령이 나타나서, 즉 관우의 신위神威가 분기하여 왜인들의 묘기妙氣를 모조리 쓸어버렸다고 믿었다. 관운장이 저승에서 도와줘서 우리나라에 면면하게 계승되는 복을 받은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동방원정군(명나라 지원군)들은 사당廟을 짓고 영혼을 달랬다. 무술년(1598년)에 명의 신종황제가 비용을 내려 숭례문 밖에 사당을 세웠다. 또 1600년에도 황제가 금전을 내려 흥인문 밖에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임금 선조와 제장수들이 참배하였고 황제의 칙명으로 ‘현령소덕관공지묘顯靈昭德關公之廟’라는 편액을 세웠다. 무릇 왜인들의 칼솜씨도 언월도의 휘두름 아래서는 피할 곳이 없었기에 언월도가 천하 제일임이 헛말이 아니다. 애석한지고, ‘36검법’이 전해지지 않음이여! 85) 정유재란 때 원정와서 활약한 명나라의 양호를 기리기 위하여 1598년에 제작된 거사비가 현존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1993년4월3일)되어 학교법인 명지학원(서대문구 남가좌동)내에 있다. 이 비 외에도 양호를 기리는 비는 대신고등학교(종로구 행촌동)내에도 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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