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나의 힘 |
보스톤코리아 2014-05-19, 11:34:45 |
언젠가 들었다.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가 한국에는 없다. 그 이유는? 대답이 경쾌하다. ‘한국에서 그런일을 백성에게 강요한다면, 백성은 분노할 것이고 곧 폭동이 일어난다.’ 장대한 건축물들은 배고픈 백성들의 피와 땀이라는 말이고, 한국인은 분노하는 민족이라 했던가. ‘버럭 한국인’이고 분노할 줄 아는 백성인게다. 분노는 나의 힘! 고추밭에 고춧대들이 다 쓰러졌다 홀로 비바람 견디기에 힘들었던가 아니라면 그 어떤 전율 같은 격한 분노에 몸을 온통 내던졌는가 ----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엮이며 세워져 한몸으로 일어선다 그렇지 그렇지 푸른 바람이 잎새들을 어루만지는구나 (쓰러진 것들이 쓰러진 것들과 중에서, 박남준) 이 문장은 온전히 내것은 아니다. 소설가 김훈式 표현이다. ‘아직도 울고 있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한창 목련이 흰빛을 뿜었다.’ 슬픔을 당해 울고 있는 자들에게 울음을 그치라 말하는 건 가당치 않은 짓이다. 슬픔을 당한 자는 울어야 마땅하다. 슬픔을 당한자가 슬픔을 넘어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대신 울지 않는 자는 울고 있는자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쳐다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슬픔이 격노激怒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목련은 그래서 희고, 그래서 슬프기만 한가 보다. 목련은 붉그락 푸르락 분노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맑디 맑은 흰색이 향내로 모습으로 분노를 감아 싼다는 말이다. 안으로 안으로 접어 삼킨다는 말일게다. 한국 동네목욕탕에 갔을 적이다. 안내표시가 인상적이다. ‘물은 마음껏 쓰십시오. 그러나 낭비는 하지 마십시오.’ 말을 바꾼다. ‘분노 하십시오. 그러나 낭비하지 마십시오.’ 분노할 일이 너무 많은 세상에 살고 있고, 우린 분노할 일을 겪고 있다. 분노하면서도 ‘새끼 잃고도 꾸역꾸역 밥을 먹고 사는 에미’ 라고 어미가 자책하고 있는 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먹어야 한다. 아이를 잃은 부모나, 살아서 돌아온 아이들이나, 옆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이나 모두 꾸역꾸역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분노하고, 싸울 힘도 생길테니 말이다. 지금은 슬픔을 넘어, 분노해야 한다. 어린 생명과 맞바꾼 멍청한 짓거리에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단지 넘치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한국목욕탕 열탕에 뜨거운 물이 넘치도록 틀어 놓는건 옳지 않다. 낭비이기 때문이다. 먹어야 한다. 그래야 분노할 수 있다. 분노하라. 그러나 낭비하지는 마라.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욥기 36:18)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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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보스톤 코리아에 들어왔습니다. 이제야 공감가는 칼럼들이 생겼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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