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31 |
보스톤코리아 2014-04-21, 12:20:01 |
이번에는 조선시대 중에서 문헌적으로 무예의 꽃을 가장 아름답게 피웠던 정조시대 전후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로 오면 무예의 용어에서 ‘택견(태껸)’과 ‘각희脚戱’를 점점 더 접하게 된다. 즉 병술이나 호신을 위하여 수련하던 무예나 무희가 발달되고 기술의 다양화가 나타남을 볼 수 있다.
즉 수박이란 무예가 택견으로 불리면서 ‘수박’은 손기술 위주의 동작이나 형태를 의미하게 되고 ‘각희’는 발기술 위주의 동작이나 형태를 의미함을 보게 된다. 즉 발동작의 기술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향상됨이 발견된다. 일례로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 에 보면 일본의 왜검법(원명은 검제劍制이다) 편에 일본의 칼기술에다 일본에는 없는(일본 검도에는 발기술이 없으며 과거에도 없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발기술을 더하여 실전에 응용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국에서 나온 용어인 ‘권법’이라는 단어도 등장한다. 특히 ‘무예도보통지’에는 권법을 24반 무예 중의 한 반으로 하여 자세하게 나와 있다. 고려시대 이전의 병법이나 전술 등은 일반 사서를 통하여 전할 뿐 별도로 남아 전하는 책이 없다.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다’ 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왜나면 불과 20년 전 까지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무예서였지만, 1993년, 선조 31년(1598년)에 편찬된 ‘무예제보武藝諸譜’의 존재가 확인되면서 무예도보통지는 그만 최고最古의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다. 이는 무예사나 체육학 뿐만 아니라 서지학書紙學계에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가장 오래된 병서는 무오병법武烏兵法과 화령도花鈴圖이다. 신라시대 원성왕 때의 대사 무오가 병법 15권과 화령도 2권을 바치므로 이내 굴압 현령에 제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고려 정종때 김해병서金海兵書(금해병서로 읽기도 한다)는 지방 수령으로 나가는 병마사가 왕에게 청하기를 “김해병서는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결要訣이니 변방의 요새에 각각 한 권씩 하사 하소서.” 하여 왕이 허락했다고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김해병서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지었다고 하며, 현재 이 책은 전하지 않는다. 김해는 연개소문의 자字이며 연개소문이 이 책으로 당나라의 명장 이정李靖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이정은 훗날 저술한 ‘이위공병법李衛公兵法’에 이 사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나중에 송나라 사람들이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 원본을 없애고 개정판을 발간하면서 연개소문에 관한 것은 모두 삭제했다고 전해진다. 이위공병법은 중국의 무경칠서武經七書(즉 손자병법, 오자병법, 사마법, 울료자, 육도, 삼략, 이위공병법) 중 하나로 꼽히는 불후의 명병법서이다. 무예도보통지에서도 상기의 무오병법과 김해병서가 뛰어난 병서이지만 전해지지 않아 상고할 길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또 같은 책에 보면 세조가 “신숙주에게 명하여 ‘무경칠서’의 주를 달고 해설케 하도록 하였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즉 상기의 병서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들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김해병서에 관하여 의문이 가는 것은 지방의 변방까지 각 한 권씩 하사하였다면 꾀 많은 필사본이나 활자본이 전해질 수도 있을텐데 정조시대에도 없었으며 현재도 역시 없다. 또한 “1462년(세조8년) 10월에 병서를 3등급으로 정하도록 명하였다. ‘병요兵要’, ‘무경칠서’, ‘병장도설兵將圖說’ 을 일등급으로 하고, ‘진법’과 ‘병정兵政’을 이등급으로 하고 …” 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병요는 단종때 수양대군이 편찬한 책이고, 현존하는 병장도설은 문종때 임금의 명으로 수양대군이 ‘진법’으로 편찬하여 수양대군이 서문을 쓰고,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해인 1455년에 한계희의 발문跋文과 1492년(성종23년)에 간행하면서 쓴 홍귀달의 발문이 추가되어 있다. 그리고 1742년(영조18년)에 책명을 ‘병장도설’로 바꾸어 복간하였다. 이 병서는 ‘광묘소찬병장도설임술중간光廟所纂兵將圖說壬戌重刊’ 이라는 표제지와 영조가 친히 찬撰(지은)한 ‘어제병장도설후서御製兵將圖說後序’를 첨가하고 진법서라고 한 수양대군의 서문을 ‘광묘어제진법서光廟御製陳法序’라고 고친 이외에는 ‘진법’의 내용과 같은데 책명을 바꾸었다. 그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 개명이 된 책이라서 그런지 무예도보통지에는 ‘병장도설’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 병서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에 각각 한 권씩 소장되어 있다. 이등급으로 분류된 진법은 태종 때나 세종 때 찬술한 진설陳說인지 아니면 진법의 가장 시조로 인정받는 고려시대의 이제현의 진법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병서는 거의 모두 조선시대에 편찬된 서적들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많은 병서들이 출간되었다. 문종때 편찬된 ‘동국병감東國兵鑑’은 김종서의 주도하에 고조선부터 고려말 까지의 전쟁사를 기록한 책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병서 중의 하나이다. 조선의 병제와 무제武諸는 세조 때 갖추어지기 시작하여 효종 때 차츰 성해지다가 정조 때 꽃을 피워 열매를 맺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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