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안에 ‘나’, 너안에 ‘너’ |
보스톤코리아 2014-02-24, 12:08:03 |
무조건 ‘나’를 사랑해주는 누군가를 열망해 본 적이 있는가? 언제든지, 어디든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누군가를 열망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우리가 꼭 겪어야 하는 과정이 있다. 공생(Symbiosis)의 관계를 말한다. 수정란의 착상과 함께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성장하기 시작한다. 공생(Symbiosis)이란 둘 이상의 생물이 서로 간에 상생을 위해 협력하는 것을 말한다. 주기만 하는 ‘반쪽의 어머님의 몸’과 받기만 하는 ‘반쪽의 태아’가 만나 하나의 몸에 두 사람이 존재한다. 이 관계는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은 존재하지 못한다. 그러함으로 ‘완전한 결합(Symbiotic Union)’이고, 완벽한 조화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으로서 갖는 최초의 관계의 시작은 무의식 속의 유아적인 환타시(Infantile Fantasy)를 통해 무조건 주는 사랑을 꿈꾸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태아로 있는 시간은 만 8개월에 불과하다. 성장해 가면서 이 공생의 관계는 변화해야 한다. 유아적인 환타시(Infantile Fantasy)는 감미롭다 못해 황홀하다. 반면, 이 관계는 ‘주종의 관계’를 요구한다. 하나는 무조건 복종을 해야 하고, 다른 한쪽은 철저하게 지배를 해야 한다. 나라는 존재는 항상 너안에 있다. 너를 통해서 난 ‘최하’가 될 수도 있고, ‘최고’가 될 수도 있다. 극과극을 요구하기에, 중간은 존재할 수 없다. 자아 도취형(Narcissism)을 예로 들어본다. 자신이 아닌 타인에 비추어 지는 선망과 칭송은 그들에게는 산소와 같다. 살아가는 의미와 재미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성공, 명예, 부와 파워를 가질 때 오는, 상대적인 우월감은 자신을 도취하게 한다. 좀 더 세련된 이는 겸손함과 선량함이라는 매스크를 쓴다. 철저하게 자신을 감춘다. 이렇게 최고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 멋지고 근사한 매스크는 유아적인 만족감을 준다. 이 도취감 때문에 평생 “애 어른” 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을 거부할지도 모른다. 유아적인 만족감은 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느끼게 한다. 자아 도취감을 계속 느끼게 해주는 ‘대상’만을 사랑하게 되는것이다. 즉, 필요한 ‘단’것이 제공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다.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생각되면, 잔인하게 버리기도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해타산적인 자기 도취적 사랑법’인 것이다. 이 계산적인 사랑법은 다른 이들의 단물을 통해, 성공의 양분을 갖게 할 수 있다. 또한, 성공을 통해 얻은 명예, 부, 파워는 더이상 이해타산적인 필요를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자신이 더 시크해지다. 그럴수록 다른이들은 자신의 사랑을 더 갈망한다. 자아도취에 더 빠진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모두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매우 약한 사랑이다. 자신이 근사해야지만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을 더 갈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사랑받기 위해, 더 큰 야망을 가져야 하고,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성공을 해야 한다. 성공은 타인의 열망을 자극시키고, 자기 도취감, 만족감을 더해 준다. 그것을 통해 사랑을 받는다고 느낀다. 블랙스완(Black Swan)을 통해, ‘나탈리 포트만’은 2010년 아카데미 여주인공상을 받았다. 그녀의 순수하고 청순했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의 ‘프리마돈나’를 맡으려는 ‘니나’의 심리적 갈등을 아주 섬세하게 잘 연기해 주었다. 발레와 집밖에 모르며, 니나는 한정되고 반복된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녀의 어머니는 미혼모의 처지로 니나를 임신하였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발레리나의 꿈을 접었다는 말을 수없이 했다. 사실은 발레리나의 전성기를 훨씬 지난 28세의 임신이었다. 이러한 상반된 메시지는 그녀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었다. 또한, 지나친 간섭과 보호를 통한 어머니의 통제를 사랑이라 여기며 살게 했다. 먹는 것조차 자신의 말을 듣게 하였고, 오로지 프리마돈나의 꿈을 향해 살게 했다. 사실은 니나를 통한 대리만족감으로 자신의 생의 의미를 찾았으면서 말이다. 철저히 남자와의 만남을 제재했다. 그 결과 그녀는 ‘소녀’에서 고착된 삶을 살아야 했다. 영화속의 그녀의 방은 온통 핑크빛으로 치장되어 있다. 인형들로 가득하다. 잘 때는 아기처럼, 오로라의 음악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그녀의 어머니는 심지어 옷까지 입혀주는 과잉 보호를 하며 난 너를 이렇게 사랑한다라고 세뇌를 시킨다. 욕심없고 착하며, 무조건 순종하는 그녀의 모습은 ‘흑조’보다 ‘백조’에게 훨씬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니나의 신경증적인 완벽성은 완벽한 흑조가 되고픈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녀(유아)’의 고착이 아닌, ‘여인(어른)’으로 변화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흑조’의 완벽한 연기에 대한 갈망은 ‘여인’으로 변하고 픈 ‘생의 성장통’을 의미한다. 이 고통을 통해 니나는 어머니에 반발해 이성에 대한 성적인 매력을 허용하고, 그동안 억눌렀던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려 한다. 그러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녀의 신경증적인 완벽성은 강박관념으로 바뀌고, 광기서린 정신 분열증으로 전이된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죽이면서 완벽한 흑조를 해내고 만다. 자신을 죽음으로 끌고간 이유가 어머니의 조건적인 사랑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딸이 죽어가는 지도 모르고 니나의 성공을 자신의 것인냥 희열과 함께 바라보던 어머니. 니나는 죽음으로 어머니에 대한 완전한 복종을 보여준다. 그렇게 완전한 지배를 한 니나의 어머니는 과연 계속 자기 도취감에 빠져 자신의 생에 만족 할 수 있을까? 너와나는 하나라는 완벽한 결합(Symbiotic Union)의 관계는 받는 희열만큼, 상실을 피할 수가 없다. 이 상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안에 너’, ‘너안에 나’를 통한 유아적인 결합(Infantile Union)을 떠나야 한다. ‘나는 나’로, ‘너는 너’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야, 조건적이 아닌,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첫번째 스텝이 시작되는 것이다. 양 미아 Licensed Psychotherapist Private Practice: 1330 Beacon St. Brookline, MA 02446 37 Fruit St. Worcester, MA 01609, 508-728-0832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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