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의 한국 고전 (古典) 1 |
보스톤코리아 2014-02-17, 12:21:56 |
여생이 얼마남지가 않은것 같다. 아무래도 과거에 부족했던 것과 또 잘못된 일들을 정리해 놓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앞서 <보스톤코리아>에 게재한 <6.25 한국전쟁과 규장각도서의 수난> 의 후편이라고해야 할것 같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글이 좀 전문적이고 특수용어가 자주나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여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이문제는 우리나라의 문화사 (文化史) 와도 관계가 적지가 않아 사실을 아는대로 밝혀 놓는 것이 좋을것 같다 규장각도서 한국본의 마이크로필름 1953년 7월27일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승패가 없이 정전회담이 성립되어 그런대로 정부가 환도했다. 그해 9월 서울대학교 건물이 미 8군으로 부터 명도되어 3년여만에 대학도서관에 정식 으로 출근하여 업무를 시작하게 되니 감개가 무량했다. 그런데 문제는 60여만 권이나 되는 도서관 장서가 서고에 제대로 배열되어 있지 않고 전부 방출되어 교내의 사방에 흩어져 폐기도서와 같이 버려져 있는 것이다. 3년의 전쟁을 겪고 또 북한 공산군이 두번이나 서울에 들어와 휩쓸고 갔으니 서울대도서관의 장서라고 그대로 온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도서관의 신문열람실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규장각도서 한국본 6만권 이었다. 규장각도서가 왜 그같이 비참한 상태로 버려져 있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여러 방면으로 그 이유를 알아 보았다. 그런데 어느 한 교수가 전해주기를 1.4 후퇴시 북한 공산군이 서울에 들어와 서울대학교도서관에 있는 규장각도서를 전부 평양으로 가져가려고 군용트럭에 싣고 가다가 미군폭격이 심해서 더 가지 못하고 의정부 근처에 버리고 간 것을 미군이 발견하여 서울대도서관에 실어 놓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미군은 어떻게 그것이 서울대도서관의 귀중도서라는 것을 알 고 가져다 놓았을까 하여, 그 교수의말을 믿기가 어려웠다. 북한공산군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규장각도서를 모두 북한으로 가져가려고 했으면 사전의 치밀한 운반계획과 함께 새끼로라도 대강 포장을 해서 가져갔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군이 가지고 가다가 의정부 근처에 버리고간 것을 미군이 발견하여 서울대학교도서관에 실어다 놓았다는 규장각도서는 폐기도서와 같이 신문열람실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것이다. 1.4후퇴시 북한군이 서울에 들러와 있는 것은 1951년 1월 4일부터 3월 5일까지 2개월에 불과했다. 그리고 한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후퇴하기에 급급한 상태에서 6만여권이나 되는 규장각도서 한국본을 모두 평양으로 가저가려고 계획을 하였을까 하는 의심도 없지 않았다. 하가야 환도후 도서관에 들어가 보니, 대학강의에 필요하다고 보여지는 서양서와 일본책을 부대자루에 넣어 <평양물보행> 이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은 것이 몇개 있었다. 그리고 1.4후퇴에 앞서 이조실록을 부산에 소개시키려고 도서관에 들어갔을 때도 승정원일기를 포장하다가 만 것이 몇 개 있었다. 어쨌든 1.4후퇴시에 서울대학 도서관에 남아서 북한군을 도와 일했다는 사람 이 없으니 당시의 사정을 알아볼 길이 없었다. 그런데 다소 후지만 연세대학교 도서관장 민영규교수가 환도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직접 와서 보고 <신동아> 잡지1966년 7월 호에 <동아문화 연구소 규장각도서 한국본 총목록> 이라는제목 하에 아래와 같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내용이 신빙성이 있고 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기에 여기에 그 전문을 게재한다. 민영규교수는 말하기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이병도박사 (당시는 정정현박사가 관장이었음) 로 부터 연희의 도서가 일부 여기에 방 치돼 있으니 와서 보라는 통지를 받고 (서울대학교도서관) 서고에 들어가 보고 놀랐다 서고는 텅 비어있고 난데없이 허청같은 창고 속에 문제의 규장각도서들이 몇백석 노적가리처럼 쌓여 올려져 있었다. 시멘트로 된 바닥은 썩은 물이 흠뻑 고여 있었다. 규장각도서가 그같이 비참한 상태로 버려져 있는 것은 서울이 유엔군에 의하여 탈환되었으나 ,아직민간인의 입주가 허용되지 않았을 때 미본국(美本國 )의 모 기관에서 파견된 어느여인이 규장각도서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찍어가고난 뒤에 처참한 모습이 (창고와같은 신문열람실에 폐기도서와 같이 쌓여있는 상태) 그 꼴이 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계속)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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